시집에서 읽은 시

헤르만 헤세의 나무 외 1편/ 김윤하

검지 정숙자 2022. 11. 30. 00:52

 

    헤르만 헤세의 나무 외 1편

 

    김윤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가 그린 참나무 한 그루

 

  외톨이의 비밀스런 고집을 잉태한 채

  초원 한가운데 서 있다

 

  홀로 자리 잡은 은자처럼 깊고 그윽한 풍경 속

  푸른빛으로 서 있다

 

  무릎 아래 잔잔히 물결치는 풀들의 안부를

  뒤적여보고 있는 나무

  속에 깃든 흔들리지 않는 영혼이

  눈길 닿는 가지마다 서늘하다

 

  카스파르 다비드가 그린 한 그루 참나무를 보며 가끔은

 

  나무를 사랑한 헤세를 만나는 일

  혹은,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던

  헤세의 말을 생각하는 일

 

  사방으로 풀냄새를 되새김질하고 있는 바람

  오래도록 초록 길은 허공까지 이어져 있다.

     -전문(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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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부

 

 

  모두 떠난 재건축아파트

  복도식 현관문마다 흰 페인트로 크게 X자가 그려 있다

  40년 넘게 새와 바람을 불러들이고

  그늘을 만들던 나무들은

  빽빽한 나이테를 드러낸 채 밑둥이 잘려 있다

 

  제집을 잃은 새들은

  키 작은 나무를 뽑느라 파헤쳐진 흙바닥에

  기억의 뿌리를 찾아 부리를 박기도 하고

  붉은 발바닥 도장을 찍으며 서성인다

  나무들이 다 어디 갔는지

  둥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널부러진 잔가지 위에 앉아 두리번거리다 날아간다

 

  강변에서 저녁놀 묻은 발을 끌고 둥지로 돌아온

  몇 마리 비둘기

  발을 헛딛는다.

      -전문(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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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물 속의 사막』에서/ 2022. 11. 15. <문학아카데미> 펴냄

  김윤하/ 서울 출생, 2000년『문학과의식』으로 등단, 시집『나의 붉은 몽골여우』『북두칠성 플래시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