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일식의 경계/ 조연향

검지 정숙자 2022. 11. 18. 02:04

 

    일식의 경계

 

    조연향

 

 

  구름 한 장 너머 어디쯤서 생각 없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걸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것이 우리 필생의 업이지

  늑대가 베어먹다 남긴 비스킷

 

  당신의 진실은 부서지지 않고 그림자에 가려져 있을 터

  산등성이 집들이 거북처럼 엎드려 있다

  서로 가까이 두고도 얼마나 추위에 떨고 있었나

 

  창문 흔드는 바람 소리에 마음을 엎드렸나

  영겁 속 내 몸 이리 통증으로 어두워지는지

  빛과 그림자 둘이 아니라는 걸 지구 어느 부위에 문신을 새기는 걸까

 

  하늘에서 땅까지 빛이 닫혀도

  서로를 포갠 채 서로의 운명 갉아 먹어도

  너는 당신과 절연할 수가 없다

 

  달의 채소밭에는 포도가 흑점을 놓으며 쓸쓸히 익어가리라

  무엇을 더 보려는가

  눈앞의 세계 사라지지 않고 그림자를 드리웠을 뿐이다

 

  나, 새끼거북처럼 등껍질 속에서 담장 밖의 세계를 향해 목을 뺀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일식이란 달이 태양의 전부나 부분을 가리키는 현상을 지칭하는데, 부분 일식, 개기 일식, 금환식 등이 있다. 어떤 경우든 지구에서 볼 때, 태양과 달이 겹치는 현상이라고 학 수 있으며, 시인은 이러한 겹침 현상을 보면서 다양한 상상력과 시적 사유를 전개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것이 우리의 필생의 업"이라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시 확인해 주는 대목인데,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이 간직한 신비와 비밀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해 있다. 물론 이러한 신비와 비밀 속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겹침이라는 사랑의 속성 또한 포함될 것이다. "서로를 포갠 채 서로의 운명 갉아 먹어도/ 나는 당신과 절연할 수가 없다"는 구절은 그러한 사랑의 신비한 힘을 암시하고 있으며, "당신의 진실은 부서지지 않고 그림자에 가려져 있을 터"라는 구절 또한 사랑의 진실에 대한 믿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가장 주된 이미지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자연과 세계의 신비와 관련되어 있다. "빛과 그림자 둘이 아니라는 걸 지구 어느 부위에 문신을 새기는 걸까"라는 대목이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세계의 실체와 자연의 모습을 응축하고 있다. 그러니까 존재의 모든 국면은 빛과 어둠의 조합으로 입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지구 또한 "문신"처럼 그러한 빛과 어둠의 조합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세계 사라지지 않고 그림자를 드리웠을 뿐"이라는 표현 또한 세계가 빛과 어둠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한 번 생성된 것은 사라지지 않고 가려질 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p. 시 21-22/ 론 120-121) (황치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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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길 위에서의 질문』에서/ 2022. 10. 31. <실천문학> 펴냄

  * 조연향/ 경북 영천 출생, 199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 2000년『시와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제1초소 새들 날아가다』『오목눈숲새 이야기』『토네이도 딸기』, 연구서『백석 김소월 민속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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