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부재에 대하여 외 1편/ 김비주

검지 정숙자 2022. 11. 4. 13:59

 

    부재에 대하여 외 1편

 

    김비주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오랜 침묵 속으로 문장 하나가

  길을 나섭니다

  풀벌레 울어주던 석양 뉘엿뉘엿 눕던,

  둥근 마음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난, 아직도 꺼낼 수 없는데

  긴 허무의 빗장이 우두커니 뜰로 내리는

  밤의 쓸쓸함을 오랫동안 안아봅니다

  부피가 커져서 돌려보낸 시간이

  자꾸만 쏟아져 들어옵니다

 

  당신도 그러한가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생들이

  바닥으로 가까워집니다

  발아래 숨쉬던 지구가 자꾸 가벼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저 이른 아침 차가운 물에

  둥둥 떠 있는 청둥오리처럼

  벗어버린 물그늘마저 허허로워지던 날

  따뜻한 볕으로 돌아올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전문 (p. 32-33)

 

 

     --------------------------

    네이버 부동산

 

 

  상처난 사람처럼 날마다 쳐다본다 네이버 부동산,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내가 살아야 할 곳의 간격은 늘 손가락 한 마디로 결정된다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날마다 왼쪽 손목을 지지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어깨가 아리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네이버 부동산에 현재의 나의 집과 미래의 나의 집이 존재한다

 

  존재, 다른 말로 하면 자인zine-스스로를 인정하는- 명명된 개념 속에 나를 가두고 집을 꿈꾼다 미래의 집은 중지를 사용해서 클릭을 해도 현실 같지 않아, 현재 읍에 살고 있는 나를 오래도록 클릭한다 그러다 그러다 네이버 부동산, 언제부턴가 실물들이 자꾸만 오그라들고 거대한 망상 속을 옮겨 다니는 검지 아래 상처를 옮긴다 만국기를 가슴에 달고 질풍노도의 기수처럼 달리다가 그만 턱 숨이 멎었다

 

  영원한 네이버 부동산, 오직 검지로 명명된 나의 집을 오랫동안 클릭했다

     -전문 (p. 68)

 

    -------------------------------------- 

  * 시집 『그해 여름은 모노톤으로』에서/ 2022. 9. 15. <상상인> 펴냄

  * 김비주/ 2018년 <부산문화예술재단> 예술창작지원금 시 부문 선정, 시집『오후 석 점, 바람의 말』『봄길, 영화처럼』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꽃의 향기 외 1편/ 정빈  (0) 2022.11.05
여백/ 정빈  (0) 2022.11.05
그해 여름*은 모노톤으로/ 김비주  (0) 2022.11.04
6 · 25 전적지 순례 6 외 1편/ 전병윤  (0) 2022.11.04
고사부리성*/ 전병윤  (0)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