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산책과 궁여지책/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1. 9. 16:15

 

 

    산책과 궁여지책

 

     정숙자

 

 

   벌써 오후 세 시다. 오늘은 기필코 책상에 붙박여야지 맘먹은 날인데도 공연히 뒨전거리며 시간을 축냈다. 시든 산문이든 펜을 쥐기 전엔 꼭 이렇게 긴장이 고조된다. 이제 좀 느긋해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어림없다. 신문을 정리한다, 손을 씻는다, 머리를 빗는다, 차를 끓인다. 옷매무새를 고친다. (…)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또한 집필의 워밍업이니 어쩔 수 없다. 글이란 참으로 붙잡기 꾀까다로운 야생동물이 아니던가. 단단히 벼르지 않고서야 메뚜기/잠자리 한 마리인들 손에 넣을 수 없지 않은가.

   일단 원고 청탁을 수락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그 원고에 대한 의식이 잠시도 골수에서 떠나지 않는다. 웬만한 근심이나 외로움 따위는 감히 끼어들지도 못한다. 탈고 후 발송을 마쳐야만 새로운 착상이나 현실적 이야기가 멀리 혹은 가까이서 어른거린다. 그러니까 블랑쇼의 표현대로라면 “도구 없이 쓰는” 달포의 구상을 거쳤음에도 정작 오늘 또 이 시각토록 원고지 주변에서 굴렁쇠만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자, 이제 책상머리에 수족을 비끄러매었으니 희뜩번뜩 날아다니는 음소들을 꿰어 볼까나.

   시간의 손실은 아무리 용을 써도 메워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부족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귀찮으리만치 남아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일지라도 어느 때는 일각이 여삼추요, 어느 때는 여삼추가 일각이다. 그렇듯 시간은 만인/만물 앞에 공평하지만 불공평하고, 불공평하지만 흠잡을 데 없이 공평하다. 이런 천변만화의 시간에 몰려 내가 산책로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무슨 일이든 삼일을 지속하면 할 만하고 삼 주를 지속하면 재미가 붙으며 석 달을 지속하면 습관이 된다.

   하물며 해를 넘기고 또 해를 넘기고 또 한해를 넘기면 주위 사람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거니와, 그런 경지가 되어야만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산책은 혼자하면 청아하고 둘이 하면 정다우며 셋 이상이면 유쾌하다. 이유인즉 산책을 나서는 자에게는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산책로는 경쟁의 트랙이 아니기에 비워 둔 마음과 계절마다의 공기와 가끔 마주치는 이웃의 수인사가 내내 맑고 따뜻하다. 나는 단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당장 불편해지는 무릎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걷는다.

   연일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을 단순히 산책만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지구가 그만큼 줄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전(自轉)의 소요 시간이 그와 정비례할 테니 말이다. 너덧 시간을 덧붙여도 모자랄 판에 두 시간씩이나 놓치다니! 아니, 아니, 아니될 말. 그렇다면…, 이전의 지구를 회복하려면 <걷기+( )>의 등식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벌충할 수 있는 방법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곰곰 궁리 끝에 ‘옳거니!’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의 ‘산책길 독서’가 가동/진행 중인 것이다.

   올해 화갑(華甲)이 된 나. 이제 ‘걷기’는 육신에 대한 임무요, 독서는 영혼에 대한 채무다. 고금의 책을 읽지 않고 쓰려고만 든다면 거름 주지 않으면서 충실한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는 백일몽이며, 뼈를 돌보지 않고 건강을 바라는 것은 일장(一場)의 춘몽(春夢)일 터.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했던가. 나는 속도와 관계없이 날마다 걷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보다 나은 글을 다듬고자 기꺼이 노력한다. 산책길 독서의 최고 장점은 집중이 잘 된다는 데 있다. 어차피 걸어야 되는 시간이니 느릿느릿 꼼꼼히 줄 쳐가며 읽는다.

   또 하나, 산책길 독서의 묘미는 조도(照度)를 맞추는 시점이다. 햇빛이 너무 밝으면 오히려 눈이 쉬 피로하다. 글씨들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 졸음마저 침범한다. 일몰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전이 최적이지만 거기 맞추기란 쉽지 않다. 콩팔칠팔 이래저래 터덕거리다 보면 늦어지는 게 예사다. 요즘엔 오후 다섯 시가 적당하다. 그때 출발하면 편안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좀 늦어질 경우 턴 지점부터는 대로변 가로등빛에 의지해야 되고, 여섯 시에 출발하면 아예 처음부터 오솔길을 포기해야 된다.

   가끔 행인이 묻기도 한다. “글씨가 보여요?” “네, 안경을 썼으니까요.”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이렇게 어두운데” 또 다시 묻는다. “적응이 되어서요.” 또 다시 대답한다. 독서 중의 대화는 짧고 명확해야 한다. 어떤 질문도 공손히 받아야 하고 가벼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하루하루 겉넘지 않게, 성실히, 자연스러운 목례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책 읽는 자의 자세가 올바르지 않다면 맨 먼저 책을 욕 먹이고 자신은 물론 산책로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아무리 사소한 행위일지언정 사회적 환경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게 양해를 구한 뒤 길턱에 나란히 걸터앉아 고민거리를 상의하기도 하고, 언젠가 어느 분은 내 걸음을 멈춰 세우고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보다도 연세가 높아 보였던 그 할머님이 그렇게 스쳐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고마움이 아닌가. 고귀함이 아닌가. 나의 독서는 나 자신을 위한 소행이건만, 베풂이나 희생도 아니건만 밉게 보기는커녕…, 정말정말 깊고 자애로운 분들이 숨어 계시는구나. 그런데 과연 내가 그런 분의 인사를 받을만한 존재이기나 한 것인가.

   이 세상 모든 일이 책 읽기만 같다면 무에 걱정이리요. 하늘 아래 책 읽기보다 쉬운 일은 없나니, 지면에 눈을 대고만 있으면 지식과 지혜가 스스로 섭취되어 미궁의 삶에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책이란 어떤 책을 막론하고 글쓴이의 희로애락이 점철/승화된 꽃이다. 갈피마다 향기가 배어 있고 색깔과 모양이 개성을 드러내며 세월을 견딘 뿌리와 줄기 사이엔 미래를 위한 씨앗들이 박혀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나무가 지닌 역사와 산소를 공급받는 일이다. 내 산책로 양옆엔 실제로도 그러한 나무들이 아치를 드리운다.

   교과서 외에 내 최초의 독서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엮은 『사랑의 선물』이었다. 오라버니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그 책 속엔 「산드룡의 유리구두」,「요술왕 아아」,「한네레의 죽음」, 「행복한 왕자」등 빼어난 동화들이 빼곡히 배열되어 있었다. 적어도 백독 이상, 아니 수백 번은 읽었을 것이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재미가 식지 않았다. 나중엔 책장이 나달나달 닳아지고 표지가 떨어져나갔다. 여백에 묻어있던 오라버니의 잉크자국이며 앉은뱅이책상, 들판을 가로지르던 기차소리가 오늘따라 애틋이 그리워진다.

   돌이켜보건대 나는『사랑의 선물』에서 두 가지의 철학(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슬픔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행복이 온다는 것과 억울하고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착하게 살아야 된다는 신념이 그것이다. 동화는 늘 사필귀정과 해피엔딩이지만 그게 또한 최상의 꿈이자 현실이다. 육십을 건너오는 동안 내겐들 어찌 슬픔이 없었겠으며 억울함이 없었겠으며 절망감에 휩싸인 적이 없었겠는가. 굽이굽이 동화 속 주인공들의 비극을 자기화하며 끌어온 삶이 행운에 힘입어 오늘에 이르렀을 뿐.

   아 참, 여기서 우리 동네 산책로를 소개해야겠다. 서울에 이런 산책로가 있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하다. 동작역 1번 출구에서 열린 오솔길이 반포천(盤浦川)을 끼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까지 이어졌는데 충동을 부추기는 상점이나 간판 등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간간히 자전거가 지나가지만 자동차는 진입 무. 게다가 주민들 역시 조용하고 수수하다. 용케도 세대를 이어가는 고양이와 새들, 비오는 날이면 개구리와 지렁이도 산책로를 공유한다. 개나리 벚꽃 아카시아 소나무 맥문동 보리수 명자꽃.

   어쨌든 산책 중 독서량이 여간 톡톡한 게 아니다. 시집은 하루 한 권, 산문은 사십 쪽 안팎을 읽는다. 일정 기간이 아니라 연속 반복되는 일과이니 그 소득이야 견줄 바 없음이다. 금년 들어 통독한 책만 헤아려도 뿌듯/부듯하다. 때로는 우산을 받고도 읽고, 나무그늘 칙칙한 길섶에선 휴대용 플래시를 비추며 읽기도 한다. 이 모두가 시간 부족에서 온 궁여지책이랄 밖에. 집에선 살림살이, 잡지들 속독, 노트, 편지, 창작, 여차여차(如此如此), 여시여시(如是如是) 산책길 독서야말로 나에게는 으뜸 수혈이며 버금 요양이다.                                 

 

     -------------------

   *『시와 미학』2012-겨울호

'에세이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꽃병/ 김길나  (0) 2013.04.09
천 원 상자/ 정숙자  (0) 2013.02.05
하물며 숙명이랴/ 정숙자  (0) 2013.01.01
단점까지 사랑하라/ 정숙자  (0) 2012.12.21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정숙자  (0) 201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