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매일⟫ 2022. 8. 25. | 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_작품론
공검空劍
정숙자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 시집 『공검 & 굴원』 p. 20
* 공검(空劍) : 허(虛)를 찌르는 칼(필자의 신조어)
[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_「공검」 작품론 / 이성혁/ 문학평론가
위의 시의 눈은 시적 비전-“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을 가진 눈, 내일의 세계를 재구성하며 재창조하는 “잠들지 않는” 눈이다. 그래서 그 눈에서 나오는 눈빛은 칼처럼 날카롭다. 세계를, ‘네거리’를 다시 구획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베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눈은 칼날이 서 있기에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것이다. 이 칼이 정숙자 시인의 신조어인 ‘공검’(허공을 베는 검)이다. ▩ ⟪경북매일⟫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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