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18
정숙자
포장도로는 대지에 풀린 비단이지요. 날 듯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 아래 노동을 생각합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비단 필 이어내느라 허리와 ᄄᆞᆷ을 바치고 있을 텐데, 먹고 입고 기거하는 삶의 모두가 남의 ᄄᆞᆷ 빌린 것인데, 이런 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그 빚 다소나마 갚고 떠날 수 있을까요. (1990.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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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울어도 흘러버리는 물
그 흐름으로 만물을
살게 하는 물
수평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알려주는 물
그 물이 네 마음 안에 있다는 것 또한
일러주는 물
그리고, 그 물이 진짜 물이라는 물
물은 어떤 물이든
가ᄍᆞ가 없다고 말하는 물
그래서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
-전문(p. 23)
♣ 시작노트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고 초가에서 자랐으며 글보다 들녘을 먼저 읽었다. 논과 밭의 푸르름을 이상은 ‘권태’라고 표현키도 했지만, 들녘의 변함없는 그 권태야말로 생명력이며 새로움이며 긴장미였다. 딴은 들녘의 곡식이 자신의 생존과 상관없는 이에게는 권태로운 풍경일 수도 있겠지···만,
초롱초롱 초록을 위해 들판 어딘가엔 방죽이 있고, 그 방죽 어딘가엔 들판으로 물을 댈 수 문과, 거기 혈류인 개울이 있게 마련이다. 저수지와 농수로라는 고등어(高等語)도 있지만, 난 지금도 어릴 때 듣던 그대로 방죽, 개울, 도랑···이런 표현이 좋다. 오늘 왜 이런 옛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한 아이가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치자. 아이가 무심히 돌멩이 하나를 집어 개울 어딘가에 놓았다 치자. 그런데 그 순간 물의 흐름이 방향을 틀었다 치자. 이제 어떤 논은 메마를 것이고, 어떤 논은 태양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그 아이는, 돌멩이는, 개울과 들녘은 혹 뮤즈의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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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6월(3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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