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일보⟫ 2022. 6. 30. |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_해설
북극형 인간
정숙자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
그 영롱함
그 무구함
그 다정함
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되어버린다
다음으로 아까운 건 뇌가 아닐까
그 직관력
그 기억력
그 분별력
이, 가차 없이 꺾이고 묻히고 만다
(관절들은 또 얼마나 섬세하고 상냥했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을지라도 육신 한 덩어리 숨지는 찰나. 정지될 수밖에 없는 소기관들. 그런 게 곧 죽음인 거지.
비
첫눈
별 의 별 자 리
헤쳐모이는 바람까지도
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따라 매스게임 벌이는지도 몰라. 사계절 너머 넘어 펼쳐지는 색깔과 율동 음향까지도
북극에 길든 순록들 모두 햇볕이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녕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한 번 가슴 속 얼음을 녹이고 싶지
- 시집 『공검 & 굴원』 p. 44~45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_「북극형인간」 해설/ 최형심 시인
예전에 어떤 분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아버지의 잘생긴 발이 그렇게 아까웠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덤덤하게 말씀하셨는데 참 아프게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이 시의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다”라는 부분에서 문득 그 일이 떠올랐습니다.죽음은 나이와 업적을 따지지 않습니다.그가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건, 어떤 극적인 경험을 했건, 어떤 고귀한 생각을 품었건 “무참히 썩거나 재가” 됩니다.그러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우리가 몸담은 어디라 한들 북극 아닌 곳”이 없는 것입니다.“이런 우리네 무덤 안팎을 위로하려고 철마다” 화려한 꽃이 피고 지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 ⟪내외일보⟫ 2022.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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