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빈 손의 기억/ 강인한

검지 정숙자 2022. 6. 15. 02:18

 

    빈 손의 기억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 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전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저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 전문 (p.15)

 

 

   * 에스프리; 나의시_강인한>에서 한 구절/ "저 수면과 돌의 아름다운 입맞춤, 황홀한 개화의 순간들을 눈에 담는다."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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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문학과 사람이 선정한 한국 유수의 시인들, 詩와 에스프리

  『내   2022. 6. 10. 초판 1쇄 <문학과 사람> 발행

  * 강인한/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두 개의 인상』『튤립이 보내온 것들』『입술』 등 11권, 시선집『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외 2권, 시론집『시를 찾는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