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이향란
그녀가 나를 들락거린다
말고 없이 빌려갔다가
슬그머니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아예 통째로 가져가기도 한다
나도 그녀를 훔친다
그녀가 어디에서 뭄엇을 하든 상관없이
쉽게 납치한다
입에 넣었다가 가슴에 넣고
눈 속에 넣었다가 뇌 깊숙이 넣기도 한다
그녀가 나를 입고, 업고, 뛸 때
나도 그녀를 안고, 메고, 달린다
정체모를 몸 안에서
하나의 이름과 두 개의 얼굴로 우리는 산다
아름다운 겹으로 서로에게 밀착하다가도
갑자기 등을 돌려 밀어낸다
동시다발적인 나와 그녀가
어느 날은 합선이 되어
걷잡을 수없이 타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그녀 속에 깃들어 그녀를 닮아갈 때
그녀도 나를 열고 들어와
곁에 고효히 드러눕는다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그때만
같은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 누가 진짜인지를
고운 눈길로 슬그머니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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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편견』 2021-겨울(20)호 <시편이 초청한 시인의 신작시와 대표시Ⅰ/ 대표시>에서
* 이향란/ 강원 양양 출생, 2002년 시집 『안개詩』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슬픔의 속도』『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너라는 간극』, 전자시집『이별 모르게 안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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