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동명이인/ 이향란

검지 정숙자 2022. 5. 14. 00:18

 

    동명이인

 

    이향란

 

 

  그녀가 나를 들락거린다

  말고 없이 빌려갔다가

  슬그머니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아예 통째로 가져가기도 한다

 

  나도 그녀를 훔친다

  그녀가 어디에서 뭄엇을 하든 상관없이

  쉽게 납치한다

 

  입에 넣었다가 가슴에 넣고

  눈 속에 넣었다가 뇌 깊숙이 넣기도 한다

 

  그녀가 나를 입고, 업고, 뛸 때

  나도 그녀를 안고, 메고, 달린다

 

  정체모를 몸 안에서

  하나의 이름과 두 개의 얼굴로 우리는 산다

  아름다운 겹으로 서로에게 밀착하다가도

  갑자기 등을 돌려 밀어낸다

 

  동시다발적인 나와 그녀가

  어느  날은 합선이 되어

  걷잡을 수없이 타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그녀 속에 깃들어 그녀를 닮아갈 때

  그녀도 나를 열고 들어와

  곁에 고효히 드러눕는다

 

  누군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그때만

  같은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 누가 진짜인지를

  고운 눈길로 슬그머니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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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편견』 2021-겨울(20)호 <시편이 초청한 시인의 신작시와 대표시/ 대표시>에서

   * 이향란/ 강원 양양 출생, 2002년 시집 『안개詩』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슬픔의 속도』『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너라는 간극』, 전자시집『이별 모르게 안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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