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낙타로 은유하는 밤/ 이규자

검지 정숙자 2024. 4. 27. 01:01

 

    낙타로 은유하는 밤

 

     이규자

 

 

  하늘길

  닿을 듯 말 듯

 

  사막 건너온 늙은 낙타

  모래 위에 무릎 꺾고 누워 있다

  눈꺼풀조차 무거운 듯 실눈 겨우 뜨고

  새끼 발소리에 귀 세우고 있다

 

  낙타 등처럼 구부러진 엄마

  참 먼 길 오셨다

  잠깐 머무는 사람의 온기

  너무 아쉽고 목말라 

  혹여 잠든 새 떠날까 봐

  잠들지도 못한다

 

  누워 있어도 힘이 센 엄마

  딸자식 발목을 묶어 놓았는지

  한 걸음도 뗄 수가 없다

 

  오늘도

  하늘에서 보낸 청첩 마다하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낙타

     -전문-

 

 

  해설> 한 문장: "낙타의 등처럼 구부러진 엄마/ 참 먼 길 오셨다"는 고백이 눈물겹다. 엄마는 오늘 하룻밤 잠깐 머무는 자식의 온기가 "너무 아쉽고 목"마른 모양인데 혹시 "잠든 새"에 사랑하는 자식이 "떠날까 봐" 제대로 "잠도 들지 못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상 길 그 많은 고초 속에서 자식들을 키워냈고 그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헤쳐왔으니 "누워 있어도 힘이 센" 우리 "엄마"다.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서 화자인 딸자식은 그가 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그러나 어머니 몸 어딘가에 "딸자식 발목을 묶어 놓았는지/ 한 걸음도 뗄 수가 없다" 참으로 애절한 모녀간의 사랑이 이 한 구절에 다 묻어난다/ 이젠 세상 나들이 그만 거두고 하늘 문을 두드릴 때가 되었지만 오늘도 엄마는 "하늘에서 보낸 청첩 마다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하루하루 독거의 시간을 견디는 중이다. 위 시작품은 도입부 "하늘길/ 닿을 듯 말 듯"에서 시작하여 시의 전개와 마무리 모든 시행이 은유의 놀이터다. '은유가 없으면 시가 아니다.'라는 시의 본령을 충실히 이행한 秀作이라 할만하다. (p. 시 92/ 론 123) <이영식/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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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낙타로 은유하는 밤』에서/ 2024. 3. 28. <상상인> 펴냄 

 * 이규자/ 2003년 『문예사조』로 수필 부문 & 『한국예총』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꽃길, 저 끝에』, 에세이집『네이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