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의 계층
이도훈
발목이 아픈 사람이
하루를 쉰다, 쉬는 내내
발목에서는 욱신거리는 일기예보가
등줄기에서는 미끄러지는 강수량이 누적되었다.
자신이 자신의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쯤이면
발목은 도망칠 궁리를 할 것이다.
나귀는 발목이 아플 때
절뚝거린다, 절뚝거리며 쉰다.
갈 때라는 말과 올 때라는 말 중
어느 쪽 말에는 가끔 짐이 없을 때도 있지만
등짐이 휘청, 들어간 발목
헛디딘 저의 몸이 삐끗, 들어간
두 발목은 계층이 다르다.
발목이 없는 꽃들, 등짐이 없는 뱀들
너무 발이 많아 어떤 발목이 아픈지
찾아내지 못한 다족류들
맨발로 지구를 돌던 인류가 대지를 차지하고 말과 관습을 바꾸어 놓은 것도 다 발목의 고통 때문은 아닐까. 저의 몸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한 존재들이 있지만 편자를 갈 듯 신발을 갈아 신어도 온전히 무게를 버티고 서야 하는 발목.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는 오로지 발목의 몫이었다.
방바닥에 누워 발목을 쉬는 사람
빈 등으로 발목을 쉬는 나귀
거대한 무게들과 등짐들이 태연하게 기다리는 날들을
걷는 발목의 계층인 나의
오늘의 걸음이 어제치를 또 갱신했다.
-전문(p. 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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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22-봄(173)호 <2000년대 시인 신작시> 에서
* 이도훈/ 2020년 ⟪한라일보⟫로 등단, 시집『맑은 날을 매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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