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김언
나는 오늘 산책을 했고 나는 어제 결혼을 했고 나는 그저께 이혼을 했고 그 전날에 죽을 뻔했고 그 전전날에 실제로 죽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그 전전전날에 태어났고 그 전전전전날에 울음을 터뜨렸고 태어나서 운 것인지 죽는다고 운 것인지 아니면 죽고 나서 운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무튼 울음은 크고 우렁찼고 더할 나위 없이 슬펐다. 그래서 산책하는 사람이 내일은 위로라고 할 것이고 모레도 격려라고 할 것이고 그런 것들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올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을 어디까지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을 때 그가 찾아왔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던 그는 어제도 찾아왔고 그제도 찾아왔고 앞으로도 찾아올 것이 분명한 태도로 말했다. 내일은 같이 갑시다. 모레도 같이 갑시다. 언제나 같이 갑시다. 내가 올 때마다 같이 갑시다. 그게 싫으면 내가 다시 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겁니다. 오늘 중으로. 아니면 내일 중으로. 아니면 두 번 다시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영원히 같이 가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 못 한다. 그냥 따라갈 뿐이다. 산책로를 따라서.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은 처음 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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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1월(385)호 <기획성/ 2010년대 후반기 한국시의 새로운 흐름_김언> 에서
* 김언/ 1998년『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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