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풀잎과 같이/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6. 24. 01:47

 

 

 

    풀잎과 같이

 

     정숙자

 

 

  오늘은 제 마음 너무도 아파

  울지도 미소짓지도 못했다오

 

  담벽에 물끄러미 기대앉아서

  포플러 소리에 눈감은 채

 

  영문도 모르고 매맞은 영혼

  그대로 하늘에 바쳤다오

 

  꽃 별 나비와 이슬…

  냇물 바람 숲과 태양…

 

  이토록 아름다운 이랑 가운데

  혼자만이 죄스레 고통을 안고

 

  어쩌지 못하는 표정 하나를

  비우려, 비워두려 애썼다오

 

  봄이면 돋고

  가을엔 질 뿐

  저항 모르는 풀잎과 같이

 

  죽더라도 그리 살게 해주십사고

  기도하며 속으로만 울었다오

 

  제 마음 끝날까지 피멍들어도

  참도록만 도와주 묵념했다오.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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