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살얼음/ 이소연

검지 정숙자 2021. 7. 7. 13:22

 

    살얼음

 

    이소연

 

 

  어제는 그가 날 죽이려고 했지

  그제는 신장을 팔아 날 살리겠다고 했고

 

  받아쓰기와 양치질을 시키면서 아이 없는 삶을 빌다가도

  아이가 반짝 코 고는 소리를 붙잡다 잠에 빠지면 사라질까 겁이 났다

 

  올올 엉켜오는 요통의 밤엔

  쑥돌로 배를 지져야만 살 수가 있었다

 

  한 코 두 코 뜨개질을 했던 겨울이 다시 왔고

  수술 날짜가 가까워졌다

 

  저녁에 찾은 생각들은 입이 없었다

  습관처럼 혼자 남은 방에서 다리털을 뽑았다

  아무리 반복해도 항상 뜻밖의 아픔이 있다

 

  선반에 둔 양파는 곰팡이 없이 물큰해진다

  양파는 썩으면서 새순을 틔운다

  그가 부엌에서 가져 온 건 양파 같은 어둠이었다

  무른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고 다시 환해지는

 

  비타민을 챙기는 게 곧 사랑이라고 했다

  내장기관이 하나씩 망가져 가니, 먹는 것마저 챙겨주는 원수가 생겼다

  바람이 부는 날엔 나를 산 채로 파묻를 거라던데

  그런 말을 들으며 사랑이 땅속에 있는 것 같고

  나는 매일 언 땅에서 태어난다

  세상 모든 게 살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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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 2021. 6. (제8호) <시집 속 작은 시집>에서

  * 이소연/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