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효은_삶과 죽음, 배달 오토바이가...(발췌)/ 배달 소년들 : 이설야

검지 정숙자 2021. 7. 7. 03:30

 

    배달 소년들 - 아스팔트

 

    이설야

 

 

  파도를 강제로 매립하였다

             물고기 눈동자들이 파묻힌 곳

 

  검은 바퀴들이 휩쓸려가고 휩쓸려오는 아스팔트

  길들이 여러 갈래 갈라지다가 다시 만나 흘러가는데

  흘러가는 것들을 가만히 흘러가지 않게

  자꾸 막아두었다

 

  배달 가던 소년이 아스팔트 위에서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졌다

  1분 1초 때문에 빨간 신호등을 마음에서 꺼버렸다

  튕겨져 나간 짧은 생

  가파른 길을 다 못 가고

  마지막 생의 출구

  부러진 화살표와 함께

  흰 선 안에 갇혔다

 

  구원의 빛은 언제나 희미하게 멀어지고

  허공 어딘가 깊은 저수지 속으로

  비둘기 한 마리 뛰어들었다

 

  깃털들 사방으로 흩날리고

  

  소년의 시간은 정지되었고

         죽음이 새로 배달되었다

 

  다시 검은 뱀들이 경주하듯 아스팔트를 속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전문, 『내일을 여는 작가』(2021-상반기, 78호)

 

  삶과 죽음, 배달 오토바이가 배달하는 것들(발췌) _김효은/ 시인, 문학평론가

  이설야 시인은 아스팔트를 무덤에 비유한다. 아스팔트만이 기억하는 죽음들이 있다. 이 텍스트에서 거리의 아스팔트는 "파도"가 "강제로 매립"된 곳, 수없이 많은 "물고기 눈동자들이 파묻힌 곳", 길고도 거대한 무덤에 비유된다. "파도"로 상징되는 청춘의 꿈과 희망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검은 바퀴들"만이 "휩쓸려가고 휩쓸려오는 아스팔트" 위로 "흘러가는 것들을 가만히 흘러가지 않게" 인위적으로 가로막아놓은 장애물들과 방지턱들만이 늘어나 자연의 흐름을 억류抑留한다. 이어서 3연에서는 한 소년의 죽음이 묘사된다. "1분 1초"의 순간, 생사의 길목에서 "튕겨져 나간 짧은 생"의 소년은 죽음이라는 출구 앞에 툭 떨어진다. 시인은 도시에서 죽어나가는 비둘기의 이미지를 소년의 죽음에 병치한다. 죽음 속으로 "비둘기 한 마리 뛰어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동요하거나 사회시스템이 정지되지는 않는다. 도심의 생태계는 여전히 고요하거나 분주하게 돌아가고 "깃털들 흩날"려도 죽음의 흔적들은 금세 말끔하게 사라진다. 시인은 "구원의 빛은 언제나 희미하게 멀어"진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구원의 빛"이 있긴 있는 것일까. 도심의 거리 한복판, "소년의 시간은 정지되었고", "죽음이 새로 배달"되었다. 수취인불명의 죽음, 죽음은 어디론가 반송되거나 폐기되고, 다시 도심의 검은 미로 속을 질주하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은 "검은 뱀들이 경주하듯" 앞다퉈 달려 나간다. 뒷좌석 검은 보관함에는 따끈한 피자와 치킨 조각들이 '목숨'보다도 단단하고 견고하게 잘 고정되어 있다. 팬데믹의 시기, 발이 묶여서 더 허기진 욕망의 입들이 벌어진 채로 그들을 애타게 기다린다. 주문콜이 울리자, "1분 1초"라도 빨리를 속으로 외치면서 한 청년이 재빠르게 시동을 건다. 상자 속 온기와 함께, 한 목숨이 신속하게 배달된다. 아니 목숨이 목숨을 배달한다. (p. 시 135-136/ 론 136-137)

  

  --------------------- 

  * 『시마』 2021. 6. (제8호) <시 읽는 계절>에서

  * 김효은/ 전남 목포 출생, 200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시 부문 & 2010년『시에』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쓸모/ 신지영  (0) 2021.07.07
살얼음/ 이소연  (0) 2021.07.07
최문자_너무 많은 시 속에 있었다(발췌)/ 위증  (0) 2021.07.05
동그란 저녁/ 김철  (0) 2021.07.05
모천(母川)/ 김철  (0) 2021.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