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 파톨로지스트*
송은숙
그는 길을 발굴하는 사람
무덤을 열고 순장된 뼈를 추려
허벅지 안쪽의 금 간 어둠을 읽어내듯
짐승의 발자국과 물의 흐름을 읽고
사구의 변화와 별자리의 배열을 읽는다
돌을 고르고 관목을 베어낸다
그는 잠든 길을 깨워 새벽길을 걷게 하는 사람
길의 어금니에는
항아리에 담긴 스페인 금화 같은 이야기가 묻혀 있을 것이다
늑골 밑엔 왕국의 비밀이,
말라버린 심장 안에는 별의 씨앗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
풀려난 이야기는 초록뱀처럼 내 방으로 스며들어
귀를 깨문다
나는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
그는 풀숲과 언덕을 지나, 사막을 건너, 고원과 설산을 넘어, 평원을 가로질러 내게로 온다
낙타 등을 타고 온다
길이 발굴되었다
길고 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전문-
* 길을 찾고 만드는 사람. 주로 옛길을 발견하는 트레일 잔문가
--------------
* 『시사사』 2021-봄(105)호 <시사사 포커스 2/ 신작시> 에서
* 송은숙/ 2000년 시집『물 속의 물고기』『얼음의 역사』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꿩/ 조남익 (0) | 2021.06.22 |
|---|---|
| 녹는 중/ 권성훈 (0) | 2021.06.22 |
| 새의 무덤/ 이호석 (0) | 2021.06.18 |
| 매시업/ 최지온 (0) | 2021.06.18 |
| 너와 눈사람과 나/ 김중일 (0) | 2021.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