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시업
최지온
우리 잠깐 볼 수 있어요?
나는 나갑니다
우리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고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해도 나갔을 겁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분히 젖은 채로도 젖지 않은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그는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내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기 때문입니다
장르도 모르는 음악 때문입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빤히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쓴 나와
비를 맞고 있는 그가
같은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곳을 지나고 있었고
같은 상품을 진열해 놓은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은 적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어려운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늘 어렵고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가끔씩 우리는
지평선을 궁금해 할 수도 있고
비처럼 흘러 아픈 데를 씻겨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그를 바라보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비는 곧 그칠 것입니다
--------------
* 『시사사』 2021-봄(105)호 <신작특집> 에서
* 최지온/ 2019년 『시로여는세상』 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모노 파톨로지스트*/ 송은숙 (0) | 2021.06.18 |
|---|---|
| 새의 무덤/ 이호석 (0) | 2021.06.18 |
| 너와 눈사람과 나/ 김중일 (0) | 2021.06.18 |
| 사랑하고 있었네/ 김예태 (0) | 2021.06.15 |
| 아우슈비츠에서/ 오세영 (0) | 2021.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