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매시업/ 최지온

검지 정숙자 2021. 6. 18. 02:04

 

    매시업

 

    최지온

 

 

  우리 잠깐 볼 수 있어요?

 

  나는 나갑니다

  우리는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고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해도 나갔을 겁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분히 젖은 채로도 젖지 않은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그는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내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기 때문입니다

  장르도 모르는 음악 때문입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빤히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쓴 나와

  비를 맞고 있는 그가

  같은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곳을 지나고 있었고

  같은 상품을 진열해 놓은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은 적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어려운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늘 어렵고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가끔씩 우리는

  지평선을 궁금해 할 수도 있고

  비처럼 흘러 아픈 데를 씻겨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그를 바라보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비는 곧 그칠 것입니다

 

  --------------

  * 『시사사』 2021-봄(105)호 <신작특집> 에서

  * 최지온/ 2019년 『시로여는세상』 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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