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교를 걷다
김덕남
그림자 나를 따라 해시계를 도는 사이
남천의 물결 위로 한세상 흘러간다
전생의 약속이었나, 꿈꾸듯이 오시던
풍덩 빠진 그 사랑에 나도 그만 첨벙했네
팽팽한 현을 골라 아들 하나 낳고 싶던
월령교* 난간대 위로 달이 뜨는 저 소리
손가락 끝 보지마라, 달을 보라 이르시던
시간을 질러가도 가는 길 아득하여
휘영청 월성을 돌아 천년토록 걷는다
-전문, 『시와문화』, 2020-가을호
* 신라 왕궁인 설성 앞을 흐르는 남천의 다리로 2018년에 복원됨
▶ 천 년 전 사랑의 가교架橋, 그 미적 세계(발췌)_최도선/ 시인
태종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는 화랑 김훔운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김흠운이 양산 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과부가 되자 요석궁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 무렵 원효는 요석공주를 본 뒤 반하여 노래를 지어 거리에 퍼뜨린다.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몰부가沒斧歌」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 주려나/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려네唯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이 노래를 들은 태종은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 귀한 아들을 얻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하여 궁리를 시켜 원효를 데려오게 한다. 원효는 이를 미리 알고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지나 궁리를 만나게 되자 월정교 아래 물에 빠져 젖은 몸으로 요석공주에게로 가 쉬게 된다. 그 후에 과연 공주는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이다.
이 설화를 배경으로 하여 나온 작품이 김덕남의 「월정교를 걷다」이다. 세월은 흘러도 역사의 흔적은 남아 후대인들 마음속에 그님의 사랑이야기가 잔잔히 새겨져 있다. 김덕남 시인도 그런 사랑 하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월정교를 걷는다. 감성적 마음에 이끌려, "풍던 빠진 그 사랑에 나도 그만 첨벙했네" 스님으로선 여인을 품을 수 없건만 품어낸 행각. 모든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깨고 나와 하늘을 떠받칠 아들 하나 낳고 싶던 원효. 일체 유심조, 무애無碍 사상을 실천한 그 정신을 닮고 싶은 거다. 그러나 견지망월見指望月 '손가락 끝 보지마라, 달을 보라 이르시던' 하며 툭 치고 나온다. 스님이 본질을 외면한 채 잠시 사랑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 마음에서 시인은 이성적 사리事理에 접어든다. 사실 그것은 승화된 대각을 이룬 구도자의 뜻을 뒤집어 말함이다. 견성에 닿고 싶은 것이다. 그러자니 천년토록이라도 걷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 잘 빚은 작품이 탄생되었다. (p. 시 279/ 론 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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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문화』 2020-겨울(56)호 <내가 주목하는 한 편의 시조> 에서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 『그 남자의 손』 『서른아홉 나연 씨』,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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