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러지
우진용
벌레도 아니고
그것도 버러지라니요
대체 뭘 잘못한 거요?
버러지만도 못하다니요
이 땅에 어쩌다 생겨나서
숨죽이며 겨우 살아가는데
얼마 되지도 않은 생마저
밟히거나 새들 먹잇감인데
벌레도 아닌 버러지라니요
아니 버러지만도 못하다니요
-전문, (p. 198)
▣ 머리말> 한 문장: 한글이 소리를 정확히 구현한 글자였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발음기관과 천지인天地人을 기호화한 24 글자족은 과학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것으로 11,172개의 글자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글자들이 소리라는 생명을 되찾은 것도 훈민정음이 발음기관의 소리 형성 원리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p. 9)
해설> 한 문장: 벌레가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에는 카프카의 『변신』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었다는 설정이 특이했지요. 영화로는 1997년에 개봉한 <Starship Troopers>를 들 수 있습니다. 거대한 벌레군단과의 전쟁이었지요. 사마귀를 닮은, 엄청나게 큰 벌레들과의 사투였지요.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대를 연상시키는 좀 유치한 즐거리였지만 컴퓨터그래픽(CG)이 정교해 실감나게 보았지요.
'더러운 벌레들'이란 영화 속 대사처럼 인간이 벌레를 왜 그렇게까지 혐오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쩌면 한 방에 온 식구가 살던 옛날에 벼룩과 이蝨와 같은 '물것'들이나 생활 주변에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모기나 파리 같은 벌레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그런 벌레들도 거의 없어졌으니 '버러지'라는 인식도 좀 바뀌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벌레는 자연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p.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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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진용 산문집 『글자 기행록』에서/ 2020. 12. 20. <시로여는세상> 펴냄
* 우진용/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흔痕』 『한 뼘』 등, 교육서 『한자어에 숨은 공부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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