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이철경
시 토론 모임을 이끌어 오던 K시인이
2차 뇌종양 수술 후
악화된 증상의 회복을 위해
쫑파티 이후, 무기한 쉬기로 했네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절만이
절실한 기억으로 남는 건 아닌 듯,
방귀가 오직 살아있는 사람의
내장에서 만들어지는 가스인 것처럼
고통과 분노 허무를 공유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시간이었네
K시인이 쓰러지거나 주저앉더라도
살아 있으므로 위안이 되었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려 안간힘 쓰는
K시인을 보았네
수시로 넘어지고 의지와 상관없이
끌어당기는 중력이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
시시포스 신화처럼 쉼 없이 넘어져도
또다시 일어설 날을 고대하네
-시집 『한장판 인생』, 2020. 실천문학
▶ 작가연구 김점용 시인 인간론/ 시에 인생을 걸었던 어느 시인의 이야기(발췌)_ 이철경/ 시인 문학평론가
그는 지금 병마와 싸우고 있다. 1차 뇌종양 수술에서 각성 상태로 8시간에 걸친 끔찍한 수술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의사는 진부한 질문을 하고 친구는 답변하는 식으로 수술하면서 오른쪽 뇌에 번진 종양을 긁어내는 소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들렸다고 한다. 첫 번째 수술 후, 몸의 절반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긴 수술이 끝난 후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끔찍한 수술을 세 번이나 진행하며 몸은 급격히 마르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이제 걷지를 못하고 누워만 있다. 음식이 자꾸 기도로 넘어가 입으로 먹지 못하고 코로 음식을 넣고 있다. 몸무게는 10㎏이나 빠졌고 섬망 증세가 간간이 나오고 있다. 의식은 있으나, 불규칙하게 인지능력이 떨어져 가족들 이름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목소리 내기도 힘든지 알아듣기 힘들다. 이미 우뇌에서 좌뇌로 암이 퍼져서 인지능력은 점점 떨어져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김점용 시인은 제멋대로 왔다가 독자들의 걱정과 무관하게 사라질까 염려가 된다. 김점용 시인의 회복을 위해 한 편의 시(「중력」)로 친구의 회복을 빈다. (p. 시 225/ 론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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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경 평론집 『심해를 유영하는 시어』에서/ 2021. 1. 19. <포엠포엠> 펴냄
* 이철경/ 전북 순창 출생, 2011년 『발견』으로 시 부문 & 2012년 『포엠포엠』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 『죽은 사회의 시인들』 『한정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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