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으로 막 착륙하는 헬리콥터의 자세로
김명철
잠자리의 날개로 떠다니던 저녁은 갔습니다
양손으로 컨테이너 집의 창살을 가만히 잡고 등을 말리던 가을 저녁은 갔습니다
흩어진 눈알들을 조각조각 기워도 방 안의 전모가 완성되지 않는 나날이었으나
비가 오는 날에도 날개를 접지 않았습니다
찢어진 날개로도 너무 가벼워 보랏빛 입술을 향해 떠다니기도 하였으나
잠자리의 날개맥을 닮은 나의 손금 어디쯤에 무거운 여자와 가벼운 아이가 사각의 방 하나를 지어 들어왔을 때
조금 찢어진 마른 꽃잎을 따라 나의 날개도 반투명이었습니다
되돌아선 사람의 굽은 등뼈를 세워 그 방문 틈으로 바람이 불어왔을 때
아침마다, 몸이, 젖어
구멍난 구름 틈에서 가느다란 다리와 수만의 눈들이 버둥거렸습니다 젖은 땅에 젖은 날개를 대고 버둥거렸습니다
뒤통수에 붙어 있는 눈이 흙에 파묻히고 돌아가거나 곧장 갈 수 없는 날개맥의 미로에서 여자와 아이를 맞닥뜨리고 바람의 방향이 남서에서 북서로 바뀐다면
그건 세수를 할 때 없던 배가 갑자기 생겨나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살煞이 흩어지려는 징후로 알았습니다
이제는 발뒤꿈치를 차일 때의 자세에서 피할 때의 자세로
날개와 몸통 사이에서 오래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전문-
▶ 생인, 천형天刑인가 축복인가(발췌)_ 김명철/ 시인
나는 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맹목 탓에 반생半生이 배신과 모반의 연속이었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답답하여라, 타인들은 나의 의도를 곡해하고는 하였다. 그 와중에 우연히 시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밖에서만 보았던 타자를 타자 안으로 들어가 엿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로 인해 내 사랑의 방식은 재편성되었다. 오랫동안의 연습이 필요했으나, 나와 타자와 그 관계들이 새로워졌다. 미가 추가 되거나 악이 선이 되기도 하였다. 몇 년간의 혼란과 정리와 혼동과 재배치를 겪은 후, 타자 속으로 들어가 타자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도 회의를 하게 되었다. 얼마나,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반문했고 제대로 들어갔는지에 대하여도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지나치게 가벼운 나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최선을 다해 나와 타자를 객관적인 나와 타자의 입장에서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아이가 재탄생하였다. 그들의 모습도 이전과는 정반대였으나 새롭게 태어난 그들도 역시, 하도 무겁거나 하도 가벼웠으니.
나는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볍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멋쩍게 침잠하거나 증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얼마나 타자를 치열하게, 올곧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륙이 아니라 이제 막 착륙하는 삶의 자세를 바라고 있다. 그런 사랑을 바라고 있다.(p. 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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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 · 양 · 총 · 서 12『현대시의 감상과 창작』에서/ 2020. 4. 17. <푸른사상사> 펴냄
* 김명철金明哲/ 1963년 충북 옥천 출생, 2006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짧게, 카운터펀치』『바람의 기원』, 서울대학교 독문과 &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화성 <시창작연구소> 대표, 現 화성 작가회의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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