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김년균/ 시인 · 한국문인협회 고문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문밖에 나서기가 두렵다. 답답한 방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업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없이 직장에 나갈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항상 불안에 빠질 것이다. 이만큼 조마조마한 세상도 없다.
전염병이란 본디 잠시 왔다가 한판 휘몰아치고 사라지는 게 상례였으나, 이번의 코로나는 생판 다르다. 옛날의 '페스트'가 그랬듯이 전 세계를 휩쓸며 공포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고 있다.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화물선을 통해 지중해를 뚫고 유럽 전역으로 창궐했다던 페스트, 유럽 인구의 30~60퍼센트 목숨을 앗아 간 것으로 전해진 최악의 유행병인 그 흑사병을 코로나는 연상시킨다. 미리 대비한 예방약도 없고,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지만, 그 약(백신)을 개발하는 데도 1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걱정만 커진다. 과학자들도 이처럼 독한 바이러스는 처음이라고 하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모두가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거리에 나서도 아는 사람조차 몰라보기 일쑤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끼리 의심하는 풍조도 생겼다. 옆사람이 혹시 코로나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어느 모임에 갔다가, 혹은 어느 행사장에 나섰다가 자기도 모르게 병을 얻어 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방역 당국은 아침마다 방송에 나와 확진자를 발표한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잘 대처하는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 남미 등은 매우 심각한 모양이다.
건강이 안 좋아 시골에 내려온 지 10년이 넘는다. 서울 공기가 나쁜 것만은 아닐 텐데, 더 좋은 공기를 바라며 내려온 터다. 물론 서울보다 자동차가 적어 시끄럽지 않고, 숲과 벌판이 있어 공기가 맑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일도 아니다. 가령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서울 하늘이나 마찬가지다. 밤이면 별이 보이지 않는 것도 매양 같다. 한데도 친구들은 좋은 데 살아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위로한다. 나 역시 그러려니 이해하고, 이만큼 지낸 것도 그 덕택으로 믿으니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돌려먹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몸이 아프면 자식 생각도 해야 한다고, 아들이 총대를 매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들 곁에서 살면 무슨 일이 생겨도 대처하기 쉽다는 것이다. 부모가 한밤중 119를 불러 엠뷸런스를 타자, 아들은 그 긴급한 시간을 길에다 허비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즘들어 부모 자식이 한집에 살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이에 두고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테다.
하지만 이사를 하려면 문제가 없지 않다. 시골은 집값이 싸서 적은 돈으로도 큰 집을 구할 수 있지만, 서울은 그 돈으로 전세를 얻기도 힘들다. 서울의 집들은 좀체 내려설 줄 모른다.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하고 소란을 피운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시골에 내려올 때, 앞일을 몰라서 도봉산 자락에 허름한 집 한 채 남겨 놓은 게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숲과 벌판이 있는 시골에 놀러앉고 싶지만, 자식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한다. 그래, 한번 바꿔 보자. 형편을 따지며 앞뒤를 둘러볼 것 없이, 나는 결연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 몸의 어디에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그 때문에 문학에 한평생 매달리며 어렵고 힘든 세월을 견뎌 왔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시골집 사랑방에서 마을 할아버지가 밤늦도록 읽어 준 「심청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등에 감동하여, 장차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 철부지의 생각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남들은 그동안 무슨 작품을 썼느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는다. 작가는 오직 작품만 쓰고, 평가는 훗날에 맡길 일이다. "작가는 어둠에서 빛을 캐내는 존재"(다르위시)라고 한다. "시란 신의 말"(투르게네프)이고, "소설이란 거리에 들고 다니는 거울"(스탕달)이라고 한다. 선배 문호들이 남긴 이런 말들을 나는 신앙처럼 믿는다. 나는 문학을 그만큼 크고 가치 있게 여긴다. 오죽해야 영국에선 셰익스피어를 두고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인간의 삶을 탐구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 이 엄중한 문학의 덕목 앞에서 나는 언제나 고개를 숙인다. 문학은 우리들의 이상이자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내겐 문인들의 우편물이 많이 온다. 시집, 소설집, 수필집, 비평집, 나는 그 책들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면, 그동안 살아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을까를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읽는다.
서울로 이사하기로 작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예전엔 못 갔던 행사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시골에서 살 땐, 서울의 행사에 참여하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교통편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번거로움이 없어지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한데 건강이 문제다. 건강이 따라 주어야 어딘들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픈 곳이 많다. 호흡기, 신장, 당뇨, 고혈압, 신경계통까지 몸 자체가 '병동'이 되어 주기적으로 병원의 진료를 받는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병원에도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한다. 코로나를 막으려면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사람과의 접촉도 피해야 한다고 떠드는 통에, 문밖엔 내다보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사람 노릇조차 못할 떄가 많다. 가까운 친척의 빈소도 못 찾았고, 더우기 스승처럼 여기던 문로 문인의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여 송구할 따름이다.
서울로 이사를 준비하지만, 코로나가 여전하니 걱정이다. 아들이 곁에 있으니 안심은 되지만, 코로나 때문에 방에 갇혀 있기는 예전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면 되레 시골에 사는 것보다 불편할는지도 모른다.
요즘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본디 한계가 있다. 지구 밖의 별에다 로켓을 날리는 기막힌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 코로나 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도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인간은 신이 아니면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떠오른다.
『중용中庸』을 보면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하늘의 길은 완벽하지만, 사람의 길은 그를 위해 노력하는 길이다)"라 했다. 사람은 '하늘'이 아니기에 그만큼 힘든 존재인지도 모른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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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0.10월호 <권두언>에서
* 월간문학/ 시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제20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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