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버리다 외 1편
박완호
엄마를 버리고 온 저녁이에요. 아까 매달아 놓은 오후가 아직 서쪽 하늘에 걸려 있어요. 난 또 그게 엄마 머리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오느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그 길을 어떻게 되돌아왔을까요. 밤이 오기 전 엄마의 흔적을 다 지워야 하나요. 햇살과 구름, 바람, 나뭇잎 지고 개울 흐르는 소리까지 다 엄마가 되어주던 순간들. 그러면 세상을 전부 지워야만 하나요. 밤이 되려면 멀었는데 엄마가 지워지기 전에는 한낮도 어둠이네요. 깜깜한 세상을 걸어 엄마가 없는 곳까지 가는 게 어쩌면 내 삶인지도 몰라요. 저만치 엄마가 혼자 흔들리는 게 보이나요. 난 아직 멀었다는 말이지요. 내일도 오늘처럼, 난 엄마를 버리러 또 어디로든 가야만 하는걸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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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 소리
페달 소리가 조금씩 가팔라졌다.
핸들을 잡은 두 팔 사이
어린 새처럼 손끝에 힘을 모으고
귓속을 파고드는 삼촌의 거친 숨결따라
읍내로 백곡으로 시오리를 휘돌았다.
독방에 쪼그리고 앉아 갈피 없어 구르는 물살을 거슬러 가다 보면 선산에서 달려온 바람이 물소리보다 먼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삼촌보다는 작은아빠라고 부르기를 좋아한 누이는 예순 살이 되도록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나는 엄마가 달린 작은 엄마라는 발음을 가만히 오물거릴 때가 제일 좋았다.
혀뿌리를 얽어맨 암을 견디고도
급작스레 찾아든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
그를 떠나보내는 날
작은엄마의 가냘픈 어깨가 울먹일 때마다
누이도 나도 자꾸만
얼굴도 가물가물한 엄마 아빠가 떠올랐지만
우리 둘 말고는 누구도 앙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작은아빠는 작은엄마의 어깨선을 따라 주저앉는 불빛 너머로 발소리도 없이 떠나가고
말 없이 손을 저으시는 작은엄마의 귀에만 들렸을 그의 마지막 페달 소리가 백곡의 물살 되짚으며 선산 쪽으로 저물어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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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에서/ 2020. 11. 2. <문학의전당> 펴냄
* 박완호/ 충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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