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목
이영주
우리는 불타는 창고에 있었다
이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현실은 합선이고
우리의 뒤통수는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덜 마른 합판을 우리 사이에 끼워두었다면
불길이 솟아오르다 겉만 태웠을 텐데
우리는 햇빛 아래서 온몸을 건조시켜 뼈를 드러내는 종족
일하는 종족이다
수분이 부족하지
이것은 은유가 아니고
한동안 창고 안에서 고기처럼 역한 냄새를 풍기며
비틀리다 뒹굴고 기어가다 재가 되고
죽음이란 붉은 빛 속의 혀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우리는 태양 아래서 온 뼈를 태워
물건을 쌓는 종족
싱싱한 피부가 부족하지
서로 엉키어서 죽었지만
함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독은 각각의 죽음 안에
서로가 서로를 뒤덮는 합판이 되어
타오르는 계단이 되어
- 전문, 『시인동네』 2020-7월호
▶코로나 시대의 양가감정과 타자 윤리(발췌)_이병철/ 시인, 문학평론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타자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와 분리 욕구를 우리 내면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타자를 혐오하면서도 그 혐오가 올바르지 않음을, 계속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래서 타자를 혐오하지 않아도 되었던 코로나 이전의 삶을 끊임없이 희구한다. 함께 어울리고, 군집하고, 스킨십 할 수 있는 코로나 이후를 꿈꾼다. 이영주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코로나19의 확산과 대유행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덜 마른 합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위 시에서 화자가 "우리는 불타는 창고에 있었다"고 진술할 때, '불타는 창고'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퍼져 있는 공간의 알레고리가 된다. 시인의 말마따나 "이것은 이미지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생하게 감각해야 할 현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혐오에 기반한 분리가 코로나 확산을 저지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애초에 적당한 거리두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거리가 지켜지지 않아서 전염병이 창궐했다. 문제는 우리가 "일하는 종족"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햇빛 아래서 온몸을 건조시켜 뼈를 드러내"기까지 일해야 하는, "태양 아래서 온 뼈를 태워/ 물건을 쌓는 종족"이다. "한동안 창고 안에서 고기처럼 역한 냄새를 풍기며/ 비틀리다 뒹굴고 기어가다 재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있지만 피하지 못했다. 택배 불물센터와 보험사 위탁 콜센터 등 피할 수 없게끔 강제된 취약 노동의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우리의 뒤통수는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현실은 합선"을 일으키고 말았다. (p. 시 46-47/ 론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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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20-가을호 <시와 질병_질병의 시학> 에서
* 이병철/ 2014년 『시인수첩으로 시 부문 & 2014년 『작가세계』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오늘의 냄새』, 산문집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비평집 『원룸속의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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