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밤과 아침의 거리/ 마경덕

검지 정숙자 2020. 10. 23. 02:19

 

 

    밤과 아침의 거리

 

    마경덕

 

 

  그 회색 앵무새

  홀로 된 여자와 50년을 함께 늙었다

 

  "잘 자요 내일 아침 다시 만나요"

  다정한 연인처럼 늦은 밤을 알리던 앵무새

 

  늙은 앵무새는 꼬박꼬박 여자에게 싱싱한 아침을 물어다 주었다

 

  "잘 자요"

  어느 날 짧은 인사만 하고 앵무새는 입을 다물었다

 

  "잘 자요"

  "다시 만나요" 사이에 낀 마지막 밤

 

  여자가 자는 동안

  앵무새는 무거운 오십 년을 끌고 어디에 도착했을까

 

  홀로 걸어간 밤과

  오지 않는 아침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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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표현』 2020-가을호 <이 계절의 신작시> 에서

  *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신발論』 『사물의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