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생 박순원
박순원
나는 왜 꼰대가 되었나?
어떻게 꼰대가 되어갔나?
나는 남자로 태어났고 곧이어 형이 되었고 오빠가 되었다 맏이므로 형이었으므로 오빠였으므로 가난한 형편에 재수까지 해서 서울서 대학을 다녔다 다니다가
군대에 갔다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그때 군대는 전 세계에서 제일 후지고 규율이 없었다 우리보다 더 후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고 남자가 된다고 나는 사람도 싫고 남자도 싫었다 그리고 또
예비군 민방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여자를 꼬시고 차이고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고 사람답게 남자답게 어리석고 어설펐고 게을렀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부의 아부의 아부의 아부를
그냥 하기 싫습니다
이유도 대책도 미련도 없이
치욕을 칫솔이라고 생각하고
남 일처럼 멀뚱멀뚱
술에 취해서 지나가던 차를 발로 차서
돈을 물어준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결론적으로 나는 꼰대가 되었다 딱딱하고 삐걱거리고 불편하고 냄새나는
담배도 끊고 술도 줄이고 건강식품 영양제 헛둘 헛둘 운동도 하고 갑자기 아프면 죽으면 폐가 될까 짐이 될까 보험도 들고
어느 날 노래방에서 왠지 비어 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소리를 높이고 높이다가 노래보다도 노래가 끝나고 윙윙대는 텅텅 울리는 미이크 소리가 더 슬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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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2020-여름호 <시에 시> 에서
* 박순원/ 충북 청주 출생, 2005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 『에르고스테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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