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47호
김효선
누군가 한밤중에 피아노를 친다
작은 깃털과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달이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밤마다 내 몸에 천공을 내는 건반들
나비가 누르면 꽃잎 떨어지는 소리 와르르
내 잠을 한 번도 쉬어 본 적 없는 귀
기다릴 게 너무 많은 사람이 나무로 태어난대
가문비나무에서 불어오는 미레도 시도레도 라라라라
어느새 벽을 소리를 가둔다
비는 언제까지 내리기로 한 걸까
아무도 그 벽을 허물지 못한다 딴딴딴
벽이 걸어가지 못한 길은 빗방울이 대신 걷는대
돌아가지 못한 빗방울이 나무의 소리를 갖는대
조금만 더 살아 보자 살아 보자
아직도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으로 키가 자란다면
건반으로 벽을 열 수도 있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건
내가 나를 버릴까 봐
밤마다 나를 안고 꾸는 꿈
꽉 조인 코르셋이 악어가 될 때까지 피아노는 멈추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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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어느 악기의 고백』에서/ 2020. 4. 20. <문학수첩> 펴냄
* 김효선/ 제주 서귀포 출생, 200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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