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톱/ 안희연

검지 정숙자 2020. 3. 3. 02:43

 

 

    톱

 

    안희연

 

 

  거긴 밤이겠지.

 

  창밖이 환해도 거긴 밤이겠지.

 

  베고 자르고 쓰러뜨리는 일을 기꺼이 할 사람은 없으니까.

 

  삐쭉삐쭉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린아이로부터 최대한 멀리 놓이는 삶이

  버겁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꿈은 사납고, 신발은 헐거워지고, 톱밥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을 때가 찾아오면.

 

  시간이 아주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 필요해지면.

 

  꿀을 넣고 조린 열매를 떠올리기로 해.

 

  바를 정에 과실 과 자를 쓴다는 , 말갛고 진한 색을 향한 기다림.

 

  이면이 없는 이름이 되는 일.

 

  바람에 펄럭이는 흰 이불을 바라보듯이

  수평에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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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0-봄호 <신작시> 에서 

   * 안희연/ 2012년『창비』로 등단, 시집『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