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주기적 여름의 교체/ 이수명

검지 정숙자 2019. 10. 19. 16:39

 

 

    주기적 여름의 교체

 

    이수명/ 2018, 김춘수문학상 수상자

 

 

  여름이 왔을 때

  나는 일을 그만두려는 중이었다.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쉬고 싶어

 

  아침에는 읽던 책의 페이지를 찾을 수 없었고 저장했던 파일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왜 이 낯선 거리를 걷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주 긴 그림자가 둥둥 떠다니는데

  거리가 흔들리는 느낌이었고

  오픈한 상가의 으카이댄스 인형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남은 5월의 날들과 6월의 날들 7월의 날들을 세어보았다.

  빛이 한 나무에 도착해 붉은 이파리 초록 이파리 은빛 이파리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빛 속을 날고 있는 벌레들은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여름에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었는지

  공중에 지체하는 시간이 늘었다.

 

  공중에서

  해가 멈춘 것 같은 여름

  여름에는 죽은 자들도 모두 보였다.

 

  나는 계속 걸어갔다. 주기적으로 여름이 와서 이번에는 좀 간단하게 자유 여행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건물의 유리를 교체하는 사람들이 유리에 붙어 있었다.

  유리를 붙잡고 빙빙 돌고  있었다.

 

  모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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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2019. 9. 20. <도서출판 경남> 펴냄

  * 이수명/ 1994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물류창고』등, 연구서『김구용과 한국 현대시』외, 시론집 『횡단』『표면의 시학』, 비평집『공습의 시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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