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사람
박찬일
사람 속에 개가 있다.
개가 나서기도 하고 사람이 나서기도 한다.
개와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개 속에 사람이 있는 경우도
만나지 못한다.
개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개가 되기도 하나
함께 있지 못한다.
개로 사람을 방문하지 못하고
사람으로 개를 방문하지 못한다.
별개라는 말이다.
개에 대한 기억도 없고 사람에 대한 기억도 없다.
별개의 방에서 개는 개를 추억하고
사람은 사람을 추억한다.
죽어서 하나가 되지만
개였던 줄 모르고 사람이었던 줄 모른다.
개로 죽으면 갠 줄 알고
사람으로 죽으면 사람으로 안다.
개와 사람이었던 줄 모른다
-격월간 『시와표현』2019. 3-4월호
▶ 흐르는 상처와 선한 노래들_ 정숙자(시인)
박찬일 시인(1956~)은 1993년『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오늘 다시 읽어보는 「두 마리의 사람」은 어느 누구로부터 상처받은 우리의 내면, 혹은 누구에겐가 상처를 줬거나 줄 수도 있는 우리의 자아를 그린 시입니다. 첫 행에 벌써 “사람 속에 개가 있다.”고 씌어 있군요. 제목은 또 어떻습니까! 사람과 개를 싸잡아 ‘마리’라는 단위를 쓴 점으로 미루어 칭찬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개와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다운 사람’일 때만큼은 ‘개’가 아니라는 의미니까요.
헤르만 헤세(1877-1962)는「황야의 이리」라는 그의 소설에서 “황야의 이리는 단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인간은 하나의 얼굴 속에 무수한 얼굴을 감추고 있”으니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 더 무서운 이리임을 피력했습니다. “개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개가 되기도 하나/ 함께 있지 못한다.” 맞습니다. 인간에게는 복잡다단한 유전자가 얽혀 있으니까요. 한 명이지만 “두 마리”일 수밖에 없는데, “죽어서 하나가 되지만/ 개였던 줄 모르고 사람이었던 줄 모른”답니다. ‘개’의 이미지를 굳히며 죽지는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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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년간『시마詩魔』창간호 2019. 06. <詩 읽는 계절 1>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뿌리 깊은 달』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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