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강웅식_ 기이한 작품(발췌)/ 빛나는 자취 : 박용철

검지 정숙자 2019. 5. 7. 00:35

 

 

    빛나는 자취

 

    박용철(1904-1938, 34세)

 

 

  다숩고 밝은해ㅅ발 이같이 나려흐르느니

  숨어있던 어린풀싹 소근거려 나오고

  새로피어 수접은 가지우 분홍 꽃잎들도

  어느하나 그의 입마춤을 막어보려 안합니다

 

  푸른밤 달비쵠데서는 이슬이 구슬되고

  길ㅅ바닥에 고인물도 호수같이 별을 잠금니다

  조그만 반딧불은 여름밤버레라도

  꼬리로 빛을뿌리고 날아다니는 헤성입니다

 

  오    그대시어 허리가느단 계집애앞에

  무릎꿇고 비는 사랑을 버리옵고

  몸에서 스사로 빛을내는 사나이가 되옵소서

 

  고개빠트리고 마음떨리는 사랑을 버리옵고

  은비비둘기같이 가슴내밀고 날아가시어

  다만 나의 흐린눈으로 그대의 빛나는 자최를 따르게 하옵소서

    -전문-

 

 

   기이한 작품/- 박용철의『빛나는 자취』(발췌)_ 강웅식

  박용철은 그가 시인으로 보여준 능력과 성취보다는 평론가(혹은 시론가)로서 보여 준 능력과 성취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시인이다.(p. 343.)

 

  박용철의 「빛나는 자취」는 모두 네 개의 절로 이루어진 14행의 시다.(작품의 인용은 『박용철 전집 1 시』(깊은샘, 2004)에 근거하였다. <깊은샘>에서 나온 전집은 1939년 박용철의 부인 임정희 여사가 시문학사에서 펴냈던 두 권의 전집 (시와 평론)의 복간본이다. 이하 박용철의 전집에서 인용할 때는 시집과 산문집을 각각 'Ⅰ'과 'Ⅱ'로 약칭하고 본문의 괄호 안에 쪽수와 함께 표시하기로 한다.)/ (p. 345.)

 

   '무명화無名火'와 '시'의 교호 작용과 연금술(발췌)

  박용철의 시론에서 '무명화(시적 체험)'와 '시(시적 표현)'의 교호 작용을 매개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시적 주체이다. 박용철의 시론의 구도에서 시적 체험이 자리하는 곳은 다름 아닌 주체, 즉 부단한 자기 단련과 자기 도야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획득하려는 시적 주체다. 또한 시적 주체의 시(시적 표현)가 가지는 가치는 시적 체험에서 비롯하지만 이 체험은 오로지 시적 표현의 단련과 도약을 이루는 데 사용된다. 시적 주체와 시의 형성 과정이 교호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박용철의 시론에는 우리가 연금술의 시학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존재한다. 연금술의 과정에서 연금술사는 자기 자신의 바깥에서 평범한 금속을 '현자의 돌'이라는 귀금속으로 변용하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가 현자의 돌이 되는 변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금속이 죽었다가 다시 생성되듯이 연금술사의 영혼 역시 소멸되었다가 다시 태어나며, 이때 금의 생성은 연금술사의 부활과 일치한다."(조르주 아감벤,「창조 활동으로서의 연금술」, 『불과 글』, 윤병언 역, 책세상, 2016, p. 198.) 요컨대 박용철의 시론은 연금술의 시학이다. 그리고 이 연금술의 시학을 자신의 시론의 중심에 놓았던 시인이 바로 김수영이다.(강웅식, 「김수영의 시학-연금술과 예술」,『계간 파란』, 2017. 겨울, pp. 120-146.)/ (p. 36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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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9-봄호 <heavy jass> 에서

* 강웅식/ 1993년『세계일보』로 문학평론 부문 등단, 『해석의 갈등』『텍스트의 이해와 욕망의 교육학』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