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신현정(1948-2009, 61세)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게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전문-
▶ "웃음과 신명과 상승은 그의 시 특유의 소유이다(발췌)
신현정 시인은 1948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나 경동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66년에 서울대학교 주최 전국고교생 문예콩쿨대회에서 시「아기새와 능금나무」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67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이시영, 송기원, 감태준, 이경록, 황충상, 김종철, 신용삼, 이진행, 김현숙, 김상렬 시인 등과 교우했다. 그리고 1974년 『월간문학』신인상에「그믐밤의 수」로 등단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서라벌고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미국 다국적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었다. 그러다가 2009년 10월 16일 간암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61세, 너무나 빠른 세상과의 이별이었다.
신현정은 1983년 첫 시집 『대립』을 출간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다가 2003년 두 번째 시집 『염소와 뿔』을 펴냈는데, 이 시집으로 서라별문학상과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는 시집『자전거 도둑』을 펴냈고, 이 시집으로 제38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8년에 발간한 시집 『바보 사막』으로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신현정은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극도로 절제하고 그것을 명랑성으로 바꾸어놓는 데 주력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에 대한 지속적인 옹립이며 철저한 긍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면성을 벗어나 놀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현정의 시 속에서 딱딱한 세계는 비로소 다정해지며 천진난만한 꿈을 품는다. 시인은 천진난만한 꿈을 끊임없이 생성시킴으로써 삶의 어둠과 슬픔을 닦아냈다."라고 평하고 있다.
신현정 시인의 고등학교 제자인 이관일 시인은 20여 년 전 어느 가을날 스승 신현정과 소주를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날 신현정 시인은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는 "관일아 너는 시 쓰지 말아라. 시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제자에게는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를 쓰지 말라던 그는 왜 그토록 시를 사랑했을까? 그가 사망한 후 문태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현정 시인은 저 건너편 어떤 나라로 가셨다. 그러나 그의 시집에는 그의 체적이 남아 있다. 조그마한 무람도 없이 세상과 상면한 대화가 담겨있다. 명랑하고, 천진하고, 또 부럽기까지 한 장난기도 섞여있다. 순응과 긍정과 운치와 웃음과 신명과 상승은 그의 시 특유의 소유이다. 이 아름다운, 우주를 달통한 시 묶음을 나는 지금 이편에서 읽노니, 그가 사는 나라가 예서 멀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을 감출 수 없다. 다시 올 요량으로 시인은 두고 가신 것이라 믿는다."라고. 시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시는 아름답고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당신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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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시詩』2018-10월호 <10월의 시인들 타계한 시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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