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토막
이탄(1940-2010, 70세)
여름날, 헤엄을 치고 놀 때
즐거웠다,
물을 먹으며 공을 던지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대개 우리들은 노는 일에 몰두했다
어깨 위로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을 때
바위처럼 살리라
구름처럼 살리라
그러면서 산 속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 여름날 해변가는 그냥 있는데
또 다른 물결이
앞에 서서
길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는
나무토막처럼 물 위에
떠 있을 것이다.
정말?
-전문, 공초문학상 수상작
▶ "시는 시대의 불이고, 생활의 물이며, 정신의 꽃이다"/ 말과 행동이 어눌했지만 더더욱 시 쓰기에 몰두(발췌)
이탄 시인은 대전 출신으로 1963년 한국외궁어대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람이 분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69년 『여원』 편집장, 1970년 《서울신문》주간국 부장을 역임했으며, 198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부교수로 근무했다. 1985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목월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래의 서정시와는 아주 다른 독특한 발상법을 갖고 있다" - 김현승
이탄 시인의 본명은 김형필이었는데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탄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하는 바람에 당선 이루 그냥 '이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평생 700여 편의 시를 발표했는데, 평론가들은 "그의 시는 서정적 주지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시적 이미지가 강조된 메타포가 뛰어나다. 하지만 그의 시는 단순히 서절성만 띠고 있지는 않다. 때로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때로는 인생의 희망과 그 속에서 찾는 참된 가치를 노래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이탄 시인의 동아일보 당선작품인 「바람 불다」를 심사한 김현승(1913-1975, 62세) 시인은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택한 이유는 현실의 사상事象을 통하여 불멸의 인간 가치가 무엇인가를 노래하는 시정신이 건전하고 그 표현이 더러는 절실하고 더러는 의젓하면서도 아무런 기성 수법이나 유행에도 감염되지 않은 자기다운 데가 귀중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재래의 서정시와는 아주 다른 독특한 발상법을 갖고 있다. 현실과 존재에 대한 현상을 풍경화처럼 묘사하숨겨져 있는 그것들의 본질이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바람을 모티브로 하여 제1행 '지표 위의 시간이 인다'가 돌출되면서 시인의 상상력은 백제시대 도미의 도미의 피리소리와 현실의 포성을 병렬 배치하게 되고. '내가 오늘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잇달아 서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낸다."(p. 102-103)
--------------------
*『See시詩』2018-9월호 <그의 삶 그의 시 memories>에서
* 글쓴이 (기록) 없음
'작고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가을에는 떠도는 이 나라의 시인들 너무 많다(발췌)/ 산문에 기대어 : 송수권 (0) | 2019.05.02 |
---|---|
웃음과 신명과 상승은 그의 시 특유의 소유이다(발췌)/ 사루비아 : 신현정 (0) | 2019.05.01 |
이경철_ 불교가 전방위로 밴 한국현대시...(발췌)/ 나목과 시 서장 : 김춘수 (0) | 2019.04.29 |
이경철_ 불교가 전방위로 밴 한국현대시...(발췌)/ 선사의 설법 : 한용운 (0) | 2019.04.29 |
서주영_ 명작의 자리/ 빈집 : 기형도 (0) | 2019.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