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禪師의 설법設法
한용운(1879-1944, 65세)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이운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전문-
▶ 불교가 전방위로 밴 한국현대시의 양상/- 불교 세계를 심미적, 감동적으로 울리는 불교적 서정시(발췌)_ 이경철
『님의 침묵』에 실린 다른 시편들에 비해 비교적 직설적이고 메시지가 분명한 시다. 번뇌의 단초인 "사랑의 쇠사슬"을 끊으라는 것이 선사의 가르침이지만 그 속박의 줄인 사랑, 정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만해의 『님의 침묵』과 미당의 시편들이 우리 현대시사의 한 봉우리를 점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불교세계에 기초했거나 끌여들였어도 시로서 엄연한 데 있다. 불법이나 이치의 궁국에 따라 생각과 정을 환전히 끊어 해탈하지 않고 생각과 정을 잘 다듬었기에 선으로 읽힐 수 있으면서도 시로서 엄연한 것이다./ 만해와 미당에게 드러나듯 불교는 이렇게 우리 현대 서정시에도 엄연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의 시다움, 시성詩性 을 갖추고 독자와의 감동의 소통을 중히 여기는 서정과 민족의 심성에 밴 불교는 끊임없이 교호하며 불교적 서정시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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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평론』2019-봄호 <논단|불교가 전방위로 밴 한국현대시의 양상>에서
* 이경철/ 문학평론가, 시인, 2010년 『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저서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미당 서정주 평전』등,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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