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읽은 나의 시

송기한_주조의 부재와 시의 내면화 경향(발췌)/ 이슬 프로젝트-43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9. 3. 26. 01:08

 

 

    이슬 프로젝트 - 43

 

    정숙자

 

 

  그는 그 자신의 아나키스트// 어둠뿐인 슬픔뿐인 우울 하나  왕이 된 생애. 날마다 각오 각성하는, 그는 그 자신의 아나키스트  아방가르드. 자신 말고는 적군도 요새도 없는 그는 그 자신의 아나키스트  아방가르드.

 

  문 밖 강물은 소리 없이 깊어지고

  뒤꼍 대나무들 안개와 울음

  삼키며 잠들곤 했네

 

  파도는 바다의

  나뭇잎은 나무의

 

  아나키스트  아방가르드, 아나키는 아나키즘의 아나키스트  아방가르드

 

  그는 그 자신의 안일과 퇴폐를 향한, 가장 초라한 총구를 닦는 그 촉구만으로 세상에는 없는 태양을 찾네. 구태여 끌지 않아도 평균율  긴장. 그는 애당초 자신의 역린을 거스르는 역린.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아킬레스.

 

  분투만이 그에게는 헛것이 아닌, 허투가 아닌 아나키스트-아방가르드

    -전문, 『예술가』, 2018-겨울호

 

 

   ▶ 주조의 부재와 시의 내면화 경향(발췌) _ 송기한/ 문학평론가 · 대전대 교수

  새로움이나 탄생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갈등과 조화, 정과 반이라는 변증적 투쟁을 거쳐야 비로소 제3의 지대에 이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새로운 자아의 탄생을 위해서 시인의 기획하는 프로젝트들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정숙자 시인은 새로운 자아를 만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아나키스트, 혹은 아방가르드의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아나키스트나 아방가르드의 의장이 절대적 성채를 부정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자아를 예비하는 서정적 자아의 분투를 이렇게 비유하는 것은 매우 이채롭고 참신하다./ 이 도정을 부정의 정신이라 했지만, 실상은 파괴의 정신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견고한 틀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부정보다는 파괴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나키스트나 아방가르드의 정신은 열정 또한 강렬하게 수반되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 파괴, 혹은 열정의 정신은 거침이 없는데, 신성의 지대인 역린의 영역도, 가장 초라한 지대인 일상의 총구들도  마구잡이로 부숴버린다. 파괴가 있어야 새로운 탄생이 가능하다. 시인은 이를 통해서 언어 이전의 지대를, 상상계의 세계를, 유토피아를 더듬어 들어가고 찾아낸다. 시의 표현대로 "세상에는 없는 태양"의 지대인 것이다. 태양은 남성적 힘의 영역이나 절대 권력의 상징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빛을 공유시키는 수호신이 되기도 한다. 물론 시인이 탐색하는 것은 후자인데, 이를 위해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도정을 향한 파괴와 정열의 정신이다. 아나키즘의 의장이라면, 아방가르드의 정신이라면, 절대 성채는 거침없이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의장과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 그리하여 개인의 정갈한 윤리, 혹은 사회의 아름다운 이상을 찾아가는 것이 이 시의 주제이다. (송기한/ 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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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시학』2019-봄호 <계간시 비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