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은기_슬픔이 흘러나오는 자리(발췌)/ 식물의 꿈 : 이현호

검지 정숙자 2018. 6. 12. 00:43

 

 

    식물의 꿈

 

    이현호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 잭 케루악, 『길 위에서』에서

 

 

  이유는 묻지 않을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각의 슬픔이 있다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밤새 손가락 한 마디쯤 자라 있는

  식물의 기묘함 같은 것

 

  유독 눈을 끔벅이지 않고 우는

  네 얼굴은 어느 슬픔의 사투리일까

  내게는 겨울이면 동쪽 바다를 찾는

  내 것만의 비통이 있고

  우리에겐 서로의 짭쪼름한 입술을 훔치던

  그 여름밤의 기도가 있다

 

  너를 슬쩍 알아챈 적도 있었다, 새점(占)을 보듯이

  신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는 어린애처럼 인간을 붙들고 있

다고 믿은 때가 있고

  네가 내게 짓는 말은 신이 사람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지만

 

  묻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우리에게는 발목을 묻고 사는 각자의 습지와

  저마다의 귓속에서 곤잠을 자는

  신의 옹알이가 있어

  왜 그러느냐고 이유도 없이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손이

  곁을 더듬대는 꿈을 번갈아 자주 꾸었을 뿐

  똑바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속으로만 물을 삼키는 관엽식물의 기묘한 표정을 알아듣는다

     -전문-

 

   ▶ 슬픔이 흘러나오는 자리(발췌) _ 정은기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화분 속의 관엽식물을 마주하고 있는 화자의 슬픔이 이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시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늘 앞의 대상을 경험적으로 인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는 대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게 된다.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라는 물음을 인용하며 시작하고  있지만 삶에 대한 절대적 표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슬픔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이고 그것은 처음부터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관엽식물의 시간은 일상적인 공간에 불쑥 출현한 이질감으로 화자의 시간에 끼어든다. 그리하여 화자의 평온은 깨진 듯하다. 슬픔이 출몰하는 자리다. 일상적인 삶에 이질적인 대상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슬픔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나'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나'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을까? 일상은 언제나 지리멸렬하고 기계적으로 반복되어 순차적으로 미래에 당도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밤새 손가락 한 마디쯤 자라 있는/ 식물의 기묘함"만큼의 슬픔으로 이 시는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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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 2018. 5-6월호 <시사사 포커스|신작시|작품론>에서

  * 이현호/ 2007년 『현대시』로 등단

  * 정은기/ 200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