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꿈
이현호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 잭 케루악, 『길 위에서』에서
이유는 묻지 않을 것이다
각자에게는 각각의 슬픔이 있다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밤새 손가락 한 마디쯤 자라 있는
식물의 기묘함 같은 것
유독 눈을 끔벅이지 않고 우는
네 얼굴은 어느 슬픔의 사투리일까
내게는 겨울이면 동쪽 바다를 찾는
내 것만의 비통이 있고
우리에겐 서로의 짭쪼름한 입술을 훔치던
그 여름밤의 기도가 있다
너를 슬쩍 알아챈 적도 있었다, 새점(占)을 보듯이
신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는 어린애처럼 인간을 붙들고 있
다고 믿은 때가 있고
네가 내게 짓는 말은 신이 사람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지만
묻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우리에게는 발목을 묻고 사는 각자의 습지와
저마다의 귓속에서 곤잠을 자는
신의 옹알이가 있어
왜 그러느냐고 이유도 없이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손이
곁을 더듬대는 꿈을 번갈아 자주 꾸었을 뿐
똑바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속으로만 물을 삼키는 관엽식물의 기묘한 표정을 알아듣는다
-전문-
▶ 슬픔이 흘러나오는 자리(발췌) _ 정은기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화분 속의 관엽식물을 마주하고 있는 화자의 슬픔이 이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시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늘 앞의 대상을 경험적으로 인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는 대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게 된다.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라는 물음을 인용하며 시작하고 있지만 삶에 대한 절대적 표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슬픔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이고 그것은 처음부터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관엽식물의 시간은 일상적인 공간에 불쑥 출현한 이질감으로 화자의 시간에 끼어든다. 그리하여 화자의 평온은 깨진 듯하다. 슬픔이 출몰하는 자리다. 일상적인 삶에 이질적인 대상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슬픔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나'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나'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을까? 일상은 언제나 지리멸렬하고 기계적으로 반복되어 순차적으로 미래에 당도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밤새 손가락 한 마디쯤 자라 있는/ 식물의 기묘함"만큼의 슬픔으로 이 시는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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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사』 2018. 5-6월호 <시사사 포커스|신작시|작품론>에서
* 이현호/ 2007년 『현대시』로 등단
* 정은기/ 200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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