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네 번째 하늘에서/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5. 00:39

 

 

      네 번째 하늘에서

 

     정숙자



  편지는 늘 시보다 따뜻하다

  허공으로 띄워 보내는 꿈이 아니라

  포근히 가 닿을 주소와 그 주소의

  주인이 있다

  편지는 한 사람이면 모든 독자다

  길이 살아남아야 할 부채도 짐지지 않는다

  그가 한 번 읽어주는 것으로

  생명을 마쳐도 좋다

  편지는 내가 아는 한 어떤 행위보다도

  고매한 발명이다

  어느새 고전이 되어버린 손편지―

  그러나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땅 위에선 시를 짓고

  하늘에선 책을 읽고, 삼십삼천(三十三天) 바깥에서도

  도솔천에서는 편지를 쓴다

  이슬 한 방울이 증발하는 시간보다도 빠르게

  읽히고 잊혀질지라도, 벗이여

  나는 내 소유의 모든 잉크 중에서

  가장 슬픈 채도를 아껴

  그대의 이름을 적는 데 쓴다

  그 속으로 몇 줄의 시가 지나갈지라도

  벗이여, 나는 그대의 이름이 한없고 곱다 
    -한국시인협회』사화집, 1999

 

      -------------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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