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대비
정숙자
물방울들이 하수구로 떠내려간다
내 얼굴 담은 물방울들은 어느 둑을 흘러도 내 얼굴이다
초가지붕 굴뚝 너머로 별자리 하나 새로 뜨던 날
배꼽자리 피를 닦은 물 한 대야가 풀밭 지나 하늘을 돌
아 다시금 내 배꼽 닦고 흐른다
유리컵 물 한 모금도 언젠가 거울에 맺혀 내 얼굴 담았던
물방울이다
개천, 아니 강이 되어도 물방울은 서로 헹굴 뿐
다른 꿍꿍이 품지 않는다
그 맑은 물살을 먹고 붕새 철새들도 먼 길을 가고…
이쯤이면 우리네 한가람(漢江) 물도 은하수 넘어선 뚝심
햇살 한 촉 후정크릴까, ―초록물 안 들이는 내 은발(銀髮)
아래 거북이 좀생이가 꿈속 구름 속 하늘을 난다
비누칠 삼가로운 욕조에 누워 물 한 바가지 친근한 방생
창에 비친 달님도 아주 벗은 몸 내버린 물 따라가며 발을
씻는다
-『시안 2002. 여름호_(원제: 浴室이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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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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