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 맛있었니?
- 교통사고 트랙
정숙자
길은 피로 이어진다
피로써 깊어지고 넓어지고 수려해진다
폭과 선을 구상한 이의 골똘한 피와 거기 합류한 노동
자의 피, 뭉개진 날개와 파충류들…의 피
그리하여 개인적 현실과 집단의 안위를 운반하는 트
랙, 혹은 트럭은 나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몰고 왔다
2010.2.11-12:30 구반포 삼거리 횡단보도
신호등을 무시한 운전자가 길 건너는 나를 ‘delete' 클
릭했다
하, 끝은 그렇게도 올 수 있는 것이었다
머리가 터졌지만
진눈깨비 흐르는 도로에 선혈이 춤추었지만
(좌측 좌골 골절)
(좌측 슬관절 비골불완전 골절)
(좌측 슬관절 반월상연골판 파열)
(좌측 대퇴부 타박 및 좌상)
(두피 열상)
덜 죽었던 나, 덜 살았던 나는 졸도하지도 않고 솟구치
는 피와 함께 가해자를 확인했고 뒹구는 휴대폰을 집어
가족을 연결했다
어쨌든
오늘은 입원 30일째
실밥 뽑은 머리통엔 도드라진 땡감이 하나
진단서 뒤쪽엔 ‘이제부터의 당신의 삶은 덤입니다’라는
불립문자
혁명가도 전사도 아닌 나…도
드디어 피를 보탰다 피로 세운 길 앞에 떳떳해졌다
명실상부 반포본동 주민이 됐다 그러나 꼭 물어보고 싶
은 게 있다
일어서서! 걸어서- 그 건널목에 돌아가는 날
아스팔트야~ 아스팔트야~
-『예술가』2010-여름(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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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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