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문학사상』2017-7월호 커버스토리(발췌)/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17. 7. 2. 17:25

 

   

    마른 가지 끝에서/ 먼 하늘을 우러르는/ 까마귀처럼(발췌)

 

      오세영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 시 <자화상> 중에서, 오세영 

 

 

  시카고로부터의 희소식,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

 격찬!

  2016년 말, 미국으로부터의 뜻밖의 소식이 왔다. 2011년 출간한 내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이 미국의 비평지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Chicago Review of Books》가 선정한 2016년 '최고 시집The Best Poetry Books' 12권 중 한 권으로 뽑혔다는 내용이었다. 선정 이유를 듣고 나니 좀 머쓱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깊은 사색과 아름다움으로 가둑한 훌륭한 시집'이라는 과분한 찬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비인간화된 미국 사회에서 아마도 내 시가 지닌  '인간의 얼굴'과 정서적 울림이 나름대로 읽힌 듯싶었다. 미국의 비중 있는 비평지에서 한국 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흐뭇했다.

 

 

  '인간이 사라진 미학',

  21세기의 시에 대하여

  우리가 사는 시대를 가리켜 흔히 인간이 죽은, 혹은 인간이 사라진 세계라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분명 있는데 존재론적으로는 없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가 오직 물질, 물신숭배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규정하거나 평가할 뿐, 통합된 감성이나 우주적 생명성을 지향하는 인간상은 이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이 빈 허무의 공간을 메꾼 것이 삶의 추상성이다. 한 마디로 인간이 인간이 아닌, 하나의 물질로 존재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에서도 인간 냄새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그 결과 시인들은 '그 시대 인간 삶의 반영'이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일찍이 예술사가 보링거Wilhelm Worringer가 지적했던 것처럼, 통합된 의식과 생명성을 폐기시킨 삶의 추상성을 마치 조현병 환자 넋두리처럼 해체, 나열하는 퇴폐적 미학에 몰두하게 되었다. 특히 아방가르드적,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으로 미화되는 오늘의 시류 예술이 그러하다.

  그러나 진정한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이 그 같은 인간상실 혹은 인간소외를 부추기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와 같은 문명사적 종말의식 혹은 퇴폐적 허무주의를 극복하여 보다 건강하고도 생명력이 충일한 문명사의 재탄생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인간이 사라진 삶의 추상성은 바로 서구 2천 년의 문명사, 특히 후대의 물질문명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 문명사를 여는 이념이란 무엇일까. 아니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인간 삶을 물화物化시킨 오늘의 서구 물질문명이 과연 그 해답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나의 판단은 부정적이다. 그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동양의 예지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나 선, 혹은 유학이나 주역사상이 대안으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내가 초기의 아방가르드적인 경향을 버리고 동양사상으로 회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인터뷰 정리: 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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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사상』2017-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