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
봄나들이
-金宗吉 선생님 영전에
정유년丁酉年 3월 초닷새
2017년 4월 1일 아침
아흔을 넘기고도 정정하신 당신은
정말 거짓말처럼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사모님 가신 지 꼭 열흘 만에
봄나들이 가듯
저 아득한 하늘로 날아가셨습니다
북망산천에도 북한산 기슭처럼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가녀린 손 흔들고 있습니까
미당未堂과 초정艸丁 대여大餘도
사모님 따라 얼마 후에 돌아가셨는데
오호라 당신들의 죽음의 방식이
참 오묘한 우주의 상징입니다
저승의 잠을 자는 베개맡에는
속손톱 같은 초승달 너머
학이 흰 날개로 수묵화를 치며 날아가고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한창입니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와 연암燕巖과 매천梅泉
육사陸史와 청마靑馬와 지훈芝薰과 목월木月
엘리엇과 예이츠와 딜런 토마스
영롱한 시의 알 속을
섬세한 저울눈으로 재며
동서고금을 넘나들던 말씀 이냥 또렷하고
시인들의 모임에 나오셔서
시의 위의威儀를 알려주시던 말씀도
당신을 보내는 지금 더욱 절절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시단의 높은 봉우리가
텅 비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조개껍질이나 줍는
어린아이 같다는 당신의 말씀대로
봄나들이 가듯 훌쩍 떠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꽃구경하는
선생님 우리 선생님
당신 없는 세상은
적막강산寂寞江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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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17-5월호 / 현대시 어드벤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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