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봄나들이-김종길 선생님 영전에/ 오탁번

검지 정숙자 2017. 6. 8. 12:07

 

 

  <추모시>

 

 

    봄나들이

    -金宗吉 선생님 영전에

 

 

  정유년丁酉年 3월 초닷새

  2017년 4월 1일 아침

  아흔을 넘기고도 정정하신 당신은

  정말 거짓말처럼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사모님 가신 지 꼭 열흘 만에

  봄나들이 가듯

  저 아득한 하늘로 날아가셨습니다

  북망산천에도 북한산 기슭처럼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가녀린 손 흔들고 있습니까

  미당未堂과 초정艸丁 대여大餘

  사모님 따라 얼마 후에 돌아가셨는데

  오호라 당신들의 죽음의 방식이

  참 오묘한 우주의 상징입니다

  저승의 잠을 자는 베개맡에는

  속손톱 같은 초승달 너머

  학이 흰 날개로 수묵화를 치며 날아가고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한창입니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와 연암燕巖과 매천梅泉

  육사陸史와 청마靑馬와 지훈芝薰과 목월木月

  엘리엇과 예이츠와 딜런 토마스

  영롱한 시의 알 속을

  섬세한 저울눈으로 재며

  동서고금을 넘나들던 말씀 이냥 또렷하고

  시인들의 모임에 나오셔서

  시의 위의威儀를 알려주시던 말씀도

  당신을 보내는 지금 더욱 절절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시단의 높은 봉우리가

  텅 비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조개껍질이나 줍는

  어린아이 같다는 당신의 말씀대로

  봄나들이 가듯 훌쩍 떠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꽃구경하는

  선생님 우리 선생님

  당신 없는 세상은

  적막강산寂寞江山입니다

 

    --------------

  *『현대시』2017-5월호 / 현대시 어드벤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