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고독한 까마귀가 되고 싶다/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17. 7. 18. 16:44

 

  <自序>

 

 

    고독한 까마귀가 되고 싶다

 

     오세영

 

 

  돌이켜 보면, 시와 학문이라는 두 길을 걸어오면서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부단한 편견을 견디어 낸 것 같다. 대학에서는 항상 이랬다. "오세영은 시 나부랭이나 쓰는 사람이지 그가 무슨 학자냐?" 문단에서는 또 항상 그랬다. "오세영이는 학자지 그가 무슨 시인이냐?" 요즈음 대학 정년을 마치고 십여 년이 되니까 다소 너그러워졌는지 문단에서 나에 대해 이런 평들을 한다고 들었다. "오세영은 정년 최임하고 시가 조금 좋아졌지 그 전에 쓴 시들이 그게 무슨 시냐?" 그러나 교과서에 실리고 독자들이 애송하는 시, 지난해 미국의 한 비평자에 의해 전 미국 최고시집 열두 권에 뽑힌 시들은 사실 내가 대학교수 시절에 쓴 작품들이다.

  나는 문단의 시류에 휩쓸린 적이 없다. 그 거셌던 민중시에 편승한 적도, 중구난방으로 휘몰아치던 포스트모던의 물결도 타 본 적이 없다. 나는 또한 자타가 한국문단의 권력이라고 공언하는 소위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사회》로부터 단 한 번의 원고 청탁을 받아 본 적도, 단 한 편의 시를 실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 전, 정부에서 수십억 원의 돈을 타 내어 그들만의 잔치로 벌였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주빈국 행사용으로, 끼리끼리 그들만이 모여 만든 대외 홍보용 한국문인인명사전에서는 아예 내 이름이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이미 독일어로 번역된 시집이 세 권이나 있어도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살아남지 않았는가?

  내 사전에는 '부화되동', '패거리'라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나는, 시 「자화상」에 썼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부화뇌동'해서 따돌림을 하는, 그 억울한 까마귀를 오히려 좋아한다. 인가人家를 넘보는 까치보다 설원雪原의 마른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먼 하늘을 우러르는 그 고독한 까마귀가 좋은 것이다.

 

 

  2017년 어느 봄

  안성의 농산재(聾山齋)에서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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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북양항로』2017.5.23. <(주)민음사> 펴냄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5~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봄은 전쟁처럼』『바람이 아들들』외, 학술서『시론』『한국 낭만주의시 연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