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장철환_『돔덴의 시간』실재, 타자, 서정, 그리고 언어(발췌)/ 70년대産 : 진은영

검지 정숙자 2017. 7. 1. 16:34

 

 

    70년대産

 

    진은영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

  결국

  서로 쏘았다

   -전문,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08)

 

 

  ▶ 실재, 타자, 서정, 그리고 언어(발췌) _ 장철환/ 문학평론가 

  이 시는 '비극'의 두 층위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비극은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적대적 전선의 부재를 암시한다. 1980년대 거대 담론 속에서, 실천의 문제는 "이유 불문인 기표, 한마디로 주인 기표인 SI이 지배적인 또는 명령하는 위치" (대니 노부스 편, 문심정연 역, 『라깡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문학과지성사, 2013.pp.49-69 참조) 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주인 담론'의 외형을 띠었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는 그러한 담론의 은폐된 본질을 비판한다. "결국/ 서로 쏘았다"는 최종 결말이 비극임을 고지한다. 이것이 이 시의 숨겨진 비극, 그러나 "70년대産" 쓰기의 실제적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으로부터 "70년대産" 이후의 쓰기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향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한 번 더 우리에게 총을 겨눌 대상을 찾아내거나, 그럼에도 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거나.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성급한 것이다. 1980년대식 투사와 믿음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다시 비극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벡터, 시적 담론의 차원에서의 실천을 사유할 필요성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위의 시는 시와 정치, 미학과 윤리학의 접합 가능성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한편 이 시가 호명하는 것은 계층으로서의 '1970년대' 세대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래파 논쟁, 신형철이 '2000년대 한국시의 뉴웨이브'(신형철 ,전복을 전복하는 전복『실천문학』, 2006.겨울.)로 규정한 '1970년대산(産) 2000년대발(發) 시인들'을 호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 시는 미래파 논쟁에 대한 메타 담론으로도 읽힐 수 있다. 진은영은 이미 "그래서 우리는 아직(!) 아무 일도 저지르지 못했다" (진은영,「소통을 넘어서, 정동의 문학을 향하여」,『문학판』, 2006.겨울, p.83.) 고 단언함으로써, 새로운 벡터에 대한 요청과 함께 미래파 논쟁이 '아무 일'도 저지르지 못했음을 반성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아무 일'도 저지르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미래파가 "전통의 부정만을 강조하는 상투적 의미의 미학적 실험"(진은영, 위의 글, p.83.)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진은영은 미래파의 호출을 받았으나, 미래파를 아방가르드의 '형식실'으로 규정함으로써, 역으로 미래파를 정치의 장으로 소환한 것이다. (장철환 비평집 『돔덴의 시간』, p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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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비평선 001『돔덴의 시간』, 2017. 2. 28.<(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펴냄  

* 장철환/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현대시』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주요저서로 『김소월 시의 리듬 연구』,『영원한 시작』(공저),『이상 문학의 재인식』(공저), 『라깡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공역)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