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쪽으로 선 나무
권주열
내가 오른쪽이라 했을 때 꽃은 더 쪽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위쪽을 가리키자 잎사귀는 가만가만 덜 쪽을 응
시하고 있다
귀를 감은 왼쪽이 천천히 찻잔에서 흘러내리고
내가 고여 있는 아래쪽은 뿌리가 있는 늘 쪽이다
줄기가 휘어지는 빨리 쪽은 내가 보라보는 앞 쪽이다
내가 뒤쪽으로 돌아설 때 비는 가끔 쪽으로 내리고
내가 염려하는 안쪽은 붉은 열매의 너무 쪽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에서 '패러프레이즈의 이단(heresy of paraphrase)'을 경계한 것은 클리언스 브룩스 같은 형식주의자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통상의 구문론을 따라 주어와 목적어, 그리고 양자의 관계 양태를 설명하는 부사, 목적어의 상태를 설명하는 형용사 등을 잘 정돈해서 이 시를 편편히 펴면 익숙한 문장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단정한 정물화를 우리에게 투사할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 그런 패러프레이즈에는 사지선다 말고는 얻을 것이 없다. 구체와 추상, 주체와 대상, 동작과 상태, 정도와 빈도 등이 활달한 구문론적 상상에 의해 등가적으로 교환되는 '사건(event)' 현장에서 우리는 정돈된 정물화 대신 사태를 다각적으로 투사하는 'VR(virtual reality)'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가상의 것이라기보다는 관념적 투사에 의해 가려져 있던 실재 본연의 것,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잠재적(virtual)인 실재라고 말해 볼 수 있는 어떤 것임이 틀림없다. (조강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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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붉은 열매의 너무 쪽』에서/ 2017.1.1. <(주)함께하는그룹파란>펴냄
* 권주열/ 1963년 울산 출생, 2004년『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시집 『바다를 팝니다』『바다를 잠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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