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여름이 떠나는 아침/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21. 02:05

 

 

   여름이 떠나는 아침

 

    정숙자

                                                  


  하루 두어 통의 편지를 쓰며

  내 가을은 저물고 싶다


  오랜 벗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늘을 가능케 한 모든 이에게

  정스럽게, 정성스럽게 손기척을 보내고 싶다


  꿈 등속은 내리어놓고

  책 읽고

  산책하고

  가장 깨끗한 시간을 찍어

  신 앞에 접어 올릴 무릎을 닦고도 싶다


  남은 기름 잦아들 동안

  어디론가 또박또박 편지를 쓰면

  시인의 빚 조금은 더는 게 될까


  욕심부렸던 글 욕심 돌려드리는 흉내는 될까


  모르는 사이 세월은 가고

  마지막 날, 천화(遷化)하는 날

  나 또한 하늘로 반송된 한 통의 편지이리라


  물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오로지 빛뿐인 빛을

  희고 긴 봉투에 나눠 담으며

  내 가을은 그렇게 저물고 싶다

     -시안1999. 겨울호

 

      ------------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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