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스크럼/ 최호일

검지 정숙자 2016. 9. 18. 16:07

 

 

    스크럼

 

    최호일

 

 

  의사는 샴쌍둥이를 나누기 시작했다 불이 켜지고 수술대 위에서 조심스

럽게 정교하게 라인을 그리고, 이른 아침을 새로  만든다 김이 무럭무럭 나

는 식빵 냄새에 무척 감동한 사람처럼

 

  섬세한 손으로 메스를 대고 가슴에서 구름을 꺼낸다 둥근 사과 껍질을

깎아 둥근 엉덩이를 만들 때 어둠 저쪽에서 다정하게 다가오는 손이 있다

그 손을 따라갔다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메스를 긋고 곡선을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잘록한 곳에 허리를 만들고 허벅지를 만들고, 여자를

섬세하게 애무하는 섬유질 같은 남자의 첫 경험처럼 슬리퍼를 끌고

 

  인류를 향해 걸어갔다

  사과가 있는 곳에서 빵이 있는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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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정신』 2016-가을호 <신작시>에서

  * 최호일/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바나나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