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목수의 꿈
이진욱
대패는 아재의 밥이다
오전에는 황가의 삐걱대던 문소리를 잡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연변댁 창틀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자잘한 목공으로 연명하던 아재
대패는 보금자리였지만 때론 한 잔의 넋두리가 되기도 했다
어떤 날
대패가 잘 먹는다며 목판이 쌕쌕 울도록 손을 놀렸지만
야박한 삯을 안고 귀가하기도 했다
길에서 공칠 때가 많은 요즘
대포로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굴곡진 날들은 깎이지 않았다
목수일만 배워두면 굶는 일 없을 거라 했던 선친
좋았던 날도 있어 대패 속에 여자와 둥지도 만들었지만
전기 대패에 밀리고 동남아인들에게 튕겼다
대목장은커녕 대패를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 손에 못만 박혔다
닳고 닳은 대팻날에 수십 채의 집이 있지만
정작 아재의 명패는 없다
손때와 지문만 희미하게 찍혀있는 대패가 녹물을 흘리며
공구통에 누워있다
*『아라문학』2016-봄호 <신작시>에서
* 이진욱/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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