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늙은 목수의 꿈/ 이진욱

검지 정숙자 2016. 4. 15. 16:16

 

 

     늙은 목수의 꿈

 

     이진욱

 

 

  대패는 아재의 밥이다 

  오전에는 황가의 삐걱대던 문소리를 잡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연변댁 창틀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자잘한 목공으로 연명하던 아재

  대패는 보금자리였지만 때론 한 잔의 넋두리가 되기도 했다

  어떤 날

  대패가 잘 먹는다며 목판이 쌕쌕 울도록 손을 놀렸지만

  야박한 삯을 안고 귀가하기도 했다

  길에서 공칠 때가 많은 요즘

  대포로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굴곡진 날들은 깎이지 않았다

 

  목수일만 배워두면 굶는 일 없을 거라 했던 선친

  좋았던 날도 있어 대패 속에 여자와 둥지도 만들었지만

  전기 대패에 밀리고 동남아인들에게 튕겼다

  대목장은커녕 대패를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 손에 못만 박혔다

  닳고 닳은 대팻날에 수십 채의 집이 있지만

  정작 아재의 명패는 없다

 

  손때와 지문만 희미하게 찍혀있는 대패가 녹물을 흘리며

  공구통에 누워있다

 

 

   *『아라문학』2016-봄호 <신작시>에서

   * 이진욱/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