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권순
못가에서 신발을 본 날은
밤새 검은 물속을 헤집는 꿈을 꾸었다
수없이 자맥질을 하는데 물의 곁을 스치며
가슴에 못이 박힌 사람이 지나갔다
본 듯한 얼굴이었다
못가에는 구두 한 짝 가지런하였다
그 속에 꽃잎 한 장 날아와 앉았다
검은 구두 속이 연분홍으로 환했다
어쩐지 눈을 뜰 수 없을 것 같은 어스름 속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귓전이 울음소리로 쟁쟁하였다
앞섶을 다 풀어헤치고 달려온 여자가 구두를 끌어안았다
꽃잎이 천천히 떨어졌다
먼 곳이 부르는 듯 얄팍한 생이 하르르 내려앉았다
한 생이 그렇게 가라앉고
수면 위에는 밀서 한 장이 떠올라 물살에 찢겼다
고요하였다
고요의 내면이 바뀌고 있었다
▶ 죽음을 통해 바라보는 인생의 고뇌(발췌) : 장종권
필자가 살던 고향에도 방죽이 있었다. 가끔은 그 방죽가에 고무신이 놓이는 날이 있었고, 이후에는 어김없이 혼굿판이 며칠이고 벌어져 온 동네를 흉흉하게 만들기도 했다. 죽은 자는 느닷없이 떠났지만 산 자들에게는 보기 드문 볼거리이기도 했다. 시인은 우연히 못가에서 신발 한 켤레를 발견하고 죽은 자에 대한 상상의 세계로 뛰어들기도 한다. '가슴에 못이 박힌 사람'이었을 것이다. '수없이 자맥질'하다가 숨을 거뒀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그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빈 신발짝에 하르르 떨어져 앉는 꽃 한 송이, 바야흐로 생명 에너지는 사라지고 우주 속에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간다. '한 생이 그렇게 가라앉'은 것이다. 죽은 자의 마지막 밀서 한 장이 떠오르지만 그것은 물결과 세상의 고요 속에 묻혀 함께 고요하다. '못가에서 신발을 본 날은/ 밤새 검은 물속을 헤집는 꿈'을 꾸는 시인은 죽은 그가 마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죽은 자의 생전 기억 속으로 걸어들어가 그와 생의 지난한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그것이 산 자들의 죽음과 화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절대적 한계 안에서의 긍정적이고 따뜻한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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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2016-봄호 <근작읽기>에서
* 권순/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 장종권/ 전북 김제 출생,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아산호 가는 길』『꽃이 그냥 꽃인 날에』『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호박꽃나라』외. 장편소설『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계간 『리토피아』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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