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곰과 관광객/ 오쓰보 레미코(大坪れみ子): 김단비 옮김

검지 정숙자 2016. 3. 30. 00:07

 

 

    곰과 관광객 / 오쓰보 레미코(大坪れみ子)

 

     김단비 옮김|한성례 감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상태가

도저히 견디기 힘든 사물이나 현상인 경우가 있다.

 

  어느 날 나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열 마리쯤

되는 곰이 큰 구덩이 속에 처박혀 있는 광경을 보았다.

그 구덩이는 다섯 평 남짓한 넓이로 파여 있었고, 바닥

이며 벽이 온통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은 없

지만 곰들이 봤을 때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의 주위를 관

광객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셈이었다. 좀 더 정

확히 말하면 곰들이 들어가 있는 곳의 천장이라 할 만한

것은 하늘뿐이었다. 구덩이의 깊이는 오륙 미터쯤이었

으리라. 어쨌든 곰들이 절대로 기어오르지 못하는 깊이

였다.

  그 곰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인근 산에서 포획되었다고

한다. 곰들은 비좁아 보이는 공간에서 관광객들을 올

려다보며 뒷다리로 벌떡 일어나 앞발을 손뼉 치듯이 맞

부딪치며 먹이를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들은 "귀여워라" 하며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다.

곰들은 먹이를 받기 무섭게 날름 먹어 치우고는 금세 다

시 일어나 손뼉을 쳤다. 관광객을 위해서는 어른 가슴

높이 정도의 튼튼한 난간이 쳐져 있었다. 절대로 떨어지

지 않도록…….

  그 광경을 보자 나는 갑자기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서 있기조차 힘들어 기념품 

가게 앞에 놓인 벤치에서 가족들이 곰 구경을 마치고 돌

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자리를 잡고 앉는 순간 갑자기 벤치가 기우뚱하고 흔

들렸다. 놀라서 기다란 벤치 끝을 쳐다보자 벤치 다리에

작은 강아지만한 새끼 곰이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그곳

에도 역시 관광객들이 멀찌감치 빙 둘러서서 곰을 놀리

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새끼 곰은 아장아장 걸어갔다가

철컹 쇠사슬에 이끌려오고, 다시 걸어갔다가 이끌려오

고는 하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가

슴이 울렁거려서 재빨리 벤치를 박차고 일어났다. 구덩

이 우리 속 어미 곰들에게 먹이 주기를 끝낸 남편과 아

이들이 "어디 안 좋아?" 하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얼굴에 놀란 나는 몸을 떨며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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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달의 얼굴』에서/ 2015.11.7. <도서출판 황금알> 펴냄.

* 오쓰보 레미코(大坪れみ子): 1954년 일본 이와테(岩手) 현 출생 1994년 시코쿠(四国) 지방 고치(高知) 현에서 니시 가즈토모(西一知) 시인이 편집 · 발행하던 시문학지 『후네(丹)』에 하마타 레미코((浜田れみ子)라는 이름으로 동인 참가.

1995년에서 2004년까지 히로시마(広島)의 시문학지 『난)蘭)』동인.

1996년 하마타 레미코 시집 『합창대가 다가온다』출간.

1998년 오쓰보 레미코로 개명.

2004년 고향인 이와테 현으로 돌아와 시의 발신지로서 시와 음악, 커피의 집 '우리들의 이유' 카페를 개점. 그 후 니시 가즈토모 시인이 『후네』와 함께 이곳으로 옮겨 왔고, 니시 가즈토모 시인이 세상을 떠난

2010년 이후로는 오쓰보 레미코 시인이 이어받아 출간하고 있다.

2001년 '우리들의 이유' 소식지 『CHaG』를 발행하기 시작.

2006년부터 자신의 내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여성 스스로가 눈을 뜨는 내용의 에세이 「지속되는 비전」을『후네』에 연재하고 있다. 또한 시론을 중시하고 역사나 사회적 상황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를 쓰는 근거와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서

2007년 시와 시론의 개인 시문학지 『새로운 천사를 위하여』를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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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례/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세종대학교 일문과와 동 대학 정책과학대학원 국제지역학과 일본전공 석사 졸업.1986년『시와 의식』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어 시집『실험실의 미인』, 일본어 시집『감색치마폭의 하늘은』『빛의 드라마』등이 있고, '허난설헌문학상'과 일본에서 '시토소조상'을 수상했다.

번역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붓다의 행복론』 등이 한국 중고등학교 각종 교과서의 여러 과목에 실렸으며, 『달에 울다』『파도를 기다리다』등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 인문서 등을 번역했다.

또한 시집『골짜기의 백합』『암호해독사』등 일본시인의 시집을 한국어로, 고은, 문정희, 정호승, 김기택, 박주택, 안도현 등 한국시인의 시집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등 한일 간에서 다수의 시집을 번역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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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 1989년 부산 출생.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문학작품 번역으로써 한일 두 나라 사이에서 다리가 되기를 꿈꾸며 대학졸업 직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시를 일본에 번역 소개하는 유일한 번역자인 한성례 시인의 문하에서 번역과 문학을 사사하고 있다. 일본의 시문학지 『후네(丹)』(2014년 겨울호)에 박상순 시인을 비롯한 6인의 시를, 『썸씽(something)』(2015 년 여름호)에 류인서 시인의 시를 『포(PO)』(2015년 여름호)에 안도현 시인을 비롯한 4인의 시를 번역 소개했으며, 한국의 시문학지 『문학청춘』(2015년 봄호)에 일본 시인 오쓰보 레미코(大坪れみ子)의 시 에세이 「니시 가즈토모(西一知)가 사랑한 나라 한국의 시인들에게」를 번역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