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버스 터미널에서
황동규
개장 날 강원랜드 입장
그날까지의 세속 일, 후 불듯 날려버리고
십 년 넘게 하루하루를 구름 속에 노닐듯 산다는
한판 잡은 자가 건네주는 개평도 즉석에서 걸어 날린다는
신선 다된 꾼도 몇 있다지만,
몰고 온 차 저당 잡힌 돈마저 털리고 셔틀버스에 실려 와
자욱한 안개비 속에 도망치듯 버스 타고 돌아가는 사람,
나 마냥 땅거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간밤에 강원랜드에서 머지않은 민박 빌라에서 자며
이십 년 전인가 두 차례 초대받은
작가 홍상화와의 환상적인 무창포 별장에서
바다 쪽을 온통 통유리 몇 장으로 두른 창에
그냥 보내기 아까운 노을이 와 머무는 것도 뒷전으로 한 채
포커에 매진하는 꿈을 꾸지 않았던가?
촉이 팍 찍혀 올인 한 판 어떻게 됐지?
홍상화가 풀 하우스를 깔며 판을 붙여 쓸어 담았지.
돈이건 친구건 털려봐야 삶의 속을 알게 된다는 말씀
자욱이 내리는 저 안개비처럼 아스팔트나 적시게 하자.
지금 이곳처럼 미세한 안개비 알갱이들이
송곳처럼 인간의 목덜미를 찌르는 곳 어디 있겠는가?
도박 안 한 것 천만다행이라 흐뭇해하는 좀스런 나는 어떡허지?
사방에 안개비 가득해 어디 잘 보이는 데 세워둘 수도 없는데.
*『시산맥』2015-겨울호 <신작시>에서
* 황동규/ 195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문(水文)/ 김희숙 (0) | 2015.11.21 |
---|---|
시인의 물건/ 문창갑 (0) | 2015.11.20 |
문방구 소녀/ 원구식 (0) | 2015.11.12 |
잠잠/ 길상호 (0) | 2015.11.12 |
주판 놓는 은사시나무/ 김영 (0) | 2015.11.03 |